외갓댁 고모댁(25) 부사공(김명리)넷째사위 화순인 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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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09-18 11:15 조회1,660회 댓글0건본문
부사공(김명리)의 막내(넷째)사위는 화순최씨 최선문입니다.
최선문의 아들(부사공의 외손자) 두명(최한공, 최한후)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아들 최한공 문과급제 전한역임 최한후 문과 대사간 도승지 최한백 무과 최한남 진사 최한번 현감
최선문(崔善門)
?∼1455(세조 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경부(慶夫), 호는 동대(東臺). 아버지는 중부령(中部令) 자강(自江)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晋州姜氏)이다.
지조가 높고 행동이 고결하여 김종직(金宗直) 등과 같은 사림의 존경을 받았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사관(仕官)에 뜻을 두지 않고 금릉 하로리(賀老里)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문과급제 여부와 시기에 대하여는 《국조인물고》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국조방목》의 문과급제자 명단에는 없다.
1421년(세종 3) 처음으로 지평에 등용된 뒤 문종 때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뒤에 공조판서를 지냈으나 문종의 뒤를 이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자 사직하였다.
1455년(세조 1) 좌찬성에 제수되었으나 끝내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최한공(崔漢公)
1423(세종 5)∼1499(연산군 5).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태보(台甫), 호는 고곡(考谷). 아버지는 우찬성 선문(善問)이며, 어머니는 김명리(金明理)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7세에 이미 시를 지었다 한다.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용교위(進勇校尉)에 기용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전한에 임용되고 1467년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세조가 사간원에 구언(求言)하자 소를 올린 문구 중에 관로를 문란하게 한 내용이 있다 하여 투옥되었다. 얼마 뒤 풀려나 부모를 봉양한다는 구실로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산수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절경을 찾아 시주(詩酒)로 소일하고, 서당을 세워 후진을 계도하는 데 힘썼다.
최한공(崔漢公) | |
세조(世祖) 5년 (기묘, 1459년), 식년시(式年試) 정과18(丁科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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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生年) | 계묘1423(癸卯1423) |
자(字) | 태보(台甫) |
호(號) | 노곡(老谷) |
본관(本貫) | 화순(和順) |
거주지(居住地) | 미상(未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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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父) | 최선문(崔善問) |
조부(祖父) | 최자강(崔自江) |
증조부(曾祖父) | 최원지(崔元之) |
외조부(外祖父) | 김명리(金明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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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과(小科) | 1453(계유) 진사시 |
전력(前歷) | 진사(進士) |
관직(官職) |
전한(典翰) |
최한후(崔漢候) | |
예종(睿宗) 1년 (기축, 1469년), 추장시(秋場試) 병과10(丙科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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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 | 자방(子房) |
호(號) | 양성(養性) |
본관(本貫) | 화순(和順) |
거주지(居住地) | 미상(未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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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兄) | 최한충(崔漢忠) |
부(父) | 최선문(崔善問) |
조부(祖父) | 최자강(崔自江) |
증조부(曾祖父) | 최원지(崔元之) |
외조부(外祖父) | 김명리(金明理) |
처부(妻父) | 홍재(洪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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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前歷) | 현감(縣監) |
관직(官職) | 대사간(大司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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