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新 풍수 기행 영천 만불산 (이몽일-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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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2-05-07 00:27 조회2,219회 댓글0건본문
영천 만불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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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로는 출가한 비구승과 비구니승 뿐 아니라 재가 남·여 신도들을 포함하는, 이른바 사부대중(四部大衆)을 현대적인 불교활동으로 포교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불교성지를 뜻하기 위해 ‘산’이라는 명호를 썼다고 한다. 어쨌거나 필자는 1996년에 이 만불산에 잠시 들른 적이 있다. 경주쪽으로 답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 굉장한 불사(佛事)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정말로 우연히 그곳에 들르게 됐던 것이다. 그때 필자는 세 가지의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선은 만불보전 앞마당까지 자동차가 쑥쑥 들어갈 수 있도록 진입로가 잘 닦여져 있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암자 하나 들어앉으면 딱 알맞은 그 비좁은 협곡에 어찌 그토록 웅장한 불사 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는 만불산을 광고하는 용지였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 2월 23일 우리나라 국가정책상의 주요 터를 잡아온 명인이며 세 계적 지관인 육관 손석우 선생이 만불산을 다녀갔다. 만불산의 형국은 상서 롭기 그지없는 노루 모양이며, 경주의 남산과 오봉산, 영천의 사룡산과 구 룡산, 그리고 채약산 등 5대 명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또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세가 부처님이 누워계시는 와불(臥佛)상이니 사찰이 서야할 자리임이 틀림없다. 만불산의 방향은 계좌(癸坐)향이니, 계좌란 하 늘의 문(天門)이 열리는 터로 풍수에서 가장 길한 방향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이후 실제로 필자는 만불산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 이유 야 독자 여러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므로 여기에서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 3월, 이른바 ‘세계 최 초 황동만불 대범종 타종식 및 범종각 낙성식’을 4월 1일에 봉행한다는 신문 보도가 또다시 필자의 만불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켰던 게다. 세계 최초라든가 황동대범종이라는 말에 마음이 끌렸을리 만무하지만, 이를테면 그동안 만불산 ‘터’의 변한 모습이 필자가 애초에 염려했던 바와 맞아떨 어지는지 아닌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그런 어떤 충동 같은 것이 일 어났던 셈이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로운 일은 일단 2차 답사하기로 마음을 정하니까, 그 다음은 또 ‘만불산’이라는 말이 혹여 고(古)문헌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게다. 그리하여 여러 옛 문헌의 색 인을 샅샅이 훑는데, 아닌게 아니라 ‘삼국유사’에 만불산이라는 말이 버젓 이 기록돼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싶어 필자는 그 내용을 여러 번 정 독하였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지금의 영천 만불산 ‘터’의 이용은 바로 그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만불산의 현재적 공간구성과 앞으로의 토지이용 전개방식을 알기 위해서 는 다소 장황하지만 우선 그 옛 기록부터 한번 살펴보아야 할 듯 싶다. “(신라) 경덕왕은 당나라 대종황제가 불교를 숭상한다는 소문을 듣고, 솜씨 좋은 장인을 시켜 오색 담요를 짜게 하고, 또 향목을 조각하게 한 후 구 슬과 아름다운 옥으로 꾸며서 한 길(一丈)이나 되는 가산(假山)을 만들어 담요 위에 놓았다. 그 산에는 기묘한 바위와 돌, 그리고 동굴이 있어 구 역이 나뉘어졌는데, 각 구역 안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과 여러나라 산천 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문안으로 들어가면 벌과 나비 가 훨훨 날고 제비와 참새가 춤을 추니 얼른 보아서는 참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또 그 한가운데에는 1만의 불상을 안치했는데, 큰 것은 사방 치가 넘었고, 작은 것은 8∼9푼쯤 되었다. 불상의 머리는 어떤 것은 큰 기장 낱알만 하고 또 어떤 것은 콩 반쪽만 했다. 머리털과 백모 (白毛: 부처의 눈썹 사이에 있는 터럭), 눈썹과 눈을 알맞게 갖추었으니 다만 사람과 똑같이 닮았다 할 뿐 이루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 산을 만불산이라고 했다. 다시 거기에 금과 옥으로 오색의 수 실이 달린 깃발과, 불상을 가리는 양산, 인도의 나무와 꽃, 열매, 그리고 누각과 정자 등을 만들어 세우니, 비록 작기는 하지만 그 형상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또 그 앞쪽으로는 돌아다니는 스님 인형 1 천여개를 늘어 세우고, 그 아래에는 세 개의 자금종(紫金鐘)을 벌여 놓았는 데, 모두 종각이 있고 쇠북과 고래 모양의 종치는 방망이까지 만들어져 있 었다. 바람이 불면 종이 울리고 스님들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한다. 그럴 때마다 은은히 불경 읽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까닭은 모두 그 종에 있었다. 이름을 만불이라 붙였지만 어찌 그 모습을 다 형용할 수 있으리오. 그런 만불산을 전해받은 당 대종은, ‘신라의 솜씨는 하늘의 솜씨이지 사람의 솜씨가 아니다’라고 찬탄했다.” 이 기록에 보이는 것처럼 만불산은 원래 불교적 색채로 정교하게 다듬 어진 신라의 조각품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품의 내용을 직접 땅 위에 재현해 보자는 것이 바로 오늘날 영천 만불산의 공간적 취지인 것이다. 현재 만불산에는 1만에다 7천옥불을 더 봉안한 만불보전과 자금종을 능 가하는(?) 황동대범종, 그리고 1천여개의 스님 인형보다 더 훌륭한 노천 아 미타불 등, 옛 만불산 조각품에서 따온 불사물(佛事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그뿐 아니다. 세계 최초·국내 최대라는 황동와불 열반상과 아미타 대불, 불교장례문화를 선도한다는 부도탑묘, 왕생단 등 온갖 볼거리들이 골 짝 안을 꽉 메우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그런 불교활동 자체를 폄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또한, 조각된 만불산은 곧 신라인의 불심과 원력으로 불교의 이상향인 해인화장(海印華藏)세계를 조성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해석 한다든가, 혹은 현재 영천 만불산에 만들어져 있는 1만불의 부처님, 관음전 , 관세음보살 석등, 황동만불범종들, 장엄 현수막, 용천지 등이 곧 그런 해인화장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것에 다름없다고 해석하는데 대해서도 별다른 이의를 달고 싶지않다. 필자의 불교적인 지식이 영 형편없을 뿐더러 그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종교연구가들이 밝혀야 할 과제인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지 이용상 드러나고 있는 공간적인 결점만은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성싶다. 사역이라는 곳이 본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 공 장소적인 특성이 있어 그 됨됨이가 방문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절제된 토지이용을 하지 않고서는 종교적 성지다 운 품격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만불산‘터’의 본 래의 됨됨이는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우선 그곳에서는 너무 많은 불사가 행 해지고 있는 듯한 감이 있다. 협소한 지세 판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행태 다. 게다가 그것도 오로지 큰 불사물만 구축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떤지 아는가. 아미타대불이 세워져 있는 산꼭대기의 지맥도 크게 훼손돼 있고, 황동와불열반상이 놓여 있는 골짝 안 지맥 하단부도 움푹 패져 있다. 그러고서도 만불산이 곧 불국토요, 극락세계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런 황당함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신라말기부터 고려초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한창 성하여 왕족과 귀족 등, 너나할 것 없이 원찰(願刹)을 새로 짓거나 혹은 기존 사원을 증창(增創)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을 때도 그런 유(類)의 불국토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말엽에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부도( 浮屠 혹은 절)를 조영하여 지덕(地德)을 쇠손케 하고 마침내 나라를 망하게 까지 하였으니 마땅히 그것을 삼갈 것이며, 도선(道詵)이 산수 순역(順逆)을 살펴 추점(推占)해 놓은 곳 외에는 절대로 사원을 세우지 말라”는 유훈 까지 했겠는가. 우리 전통의 불국토관은 바로 그같이 국토지맥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시 하는, 거시적이면서도 원대한 포부를 지닌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타적인 불교정신이 깃들인 동시에 생중이경(生重利輕)의 환경정신도 살아 있는, 그런 참된 불국토관이었다는 말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이토록 지맥 보호의 불국토관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나마 일말의 기대감마저 쉬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듣기에, 만불산에다 조각품에 있었다는 동굴을 본뜬 견 성(見性)정토동굴도 만들 계획까지 돼 있는 모양인데, 천연동굴이 없다면 멀 쩡한 산허리를 뚫어 인공동굴을 만들 게 뻔하지 않는가. 우리 어진 중생들 의 ‘절집 감각’을 마비시킬 요량이라면 얼마든지 지맥에 손을 대도 좋다. 하지만 만불산이 정녕 종교적인 성지로 남고 싶다면 그 일만은 절대로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잖아도 포클레인으로 움푹 패 나간 자리에 누워 있는 황동와불상을 보는 것이 안쓰러워 골짝 밖으로 줄 달음쳐 나오는데, 골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그때 등 뒤로, “여러분, 이 바람이 무슨 바람인지 아십니까. 부처님이 오늘 황금대범종 타종식을 기뻐 하시어 춤을 덩실덩실 추기 때문에 부는 바람입니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 린다. 바로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만불산 온 골짝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또 어인 까닭일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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