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김두남 선조님 묘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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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6-09-26 20:39 조회1,458회 댓글1건본문
지난 일요일 청백리 김두남 선조님의 묘비 탁본을 위해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다섯 곳의 수령을 역임하고도 먹을 양식이 없었다는 기록이 전해오는 청백리 김두남 선조님. 그 묘비명의 기록조차 따로 전해오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태영님의 발의로 선조님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탁본을 하여 묘비의 기록을 판독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참석자(무순) : 태영. 항용. 재구. 태우. 발용.
현지에서 만난 분들 : 후손 창회님 내외분과 자제분.
후손 영회님과 두 자제분 및 벌초에 동행하신 여러 며느님.
김두남(金斗南) 1657(효종8) ~1715(숙종41)
字는 (일경)一卿, 號 (탁청헌)濯淸軒, 성균관생원, 1687년(숙종1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고 헌납(獻納), 장령(掌令), 사련원헌납겸춘추관기주관(司言束院獻納兼春秋館記注官)을 역임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 예조판서겸지경연의금부사(禮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事),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성균관사(成均館事), 오위도총부도총관(吳衛都摠莩摠官), 세손좌빈객(世孫左賓客)에 추증. 1734(영조10) 8월,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 휘 두남 선조님 묘소 - 십여 년 전 산 건너편에 계시던 선조님의 묘소를 천장하며 봉분은 만들지 않고 유골은 수습하여 묘비 밑에 모셨다고 합니다.
▲ 탁본에 앞서 예를 고하고....
▲ 본격적인 탁본 준비.
▲ 항용님 - 다년간 전국각지의 선조님 관련 금석문을 탁본해 오신 경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 태우님
▲ 태영님 - 탁본하는 중에도 준비해온 선조님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습니다. 선조님에 대한 자료를 귀로 들으며 탁본을 하니 효과 만점.
▲ 재구님. 태우님 - 한지를 재단하는 중입니다.
▲ 부근에 벌초하러 오셨던 후손 영회님 가족.
▲ 탁본 품평회(?).
▲ 후손 창회님으로부터 묘역 조성경위를 기록하는 태영님.
▲ 탁본을 마치고....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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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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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사합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