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金九 기사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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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5-09 02:58 조회1,534회 댓글0건본문
백범金九 기사 (2002년 5월)
일간신문에 백범 김구선생 관련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조선일보/문화)
●[문화] ‘백범일지’ 완본 첫 발간 (2002.05.07)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의 해방 이후 기록까지를 포함한 ‘백범일지’ 완본이 처음으로 발간됐다.
작년 12월 출범한 백범학술원(원장 신용하·愼鏞廈)이 최근 펴낸 ‘백범 학술원’ 총서 1,2권 중 둘째권이다.
이번에 추가된 부분은 A4 용지 30여페이지 분량으로 ‘백범일지’ 발간 이후에 쓴 글이다. 일제 패망 직전 중경 임시정부 활동과 환국 직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백범일지’는 임시정부 주석으로 매일같이 사선을 넘나들던 백범이 어린 두아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알리기위해 유서 대신으로 쓴 자서전이다.
백범학술원은 일단 1차분 사업으로 정한 총서 10권중 ‘백범 김구 선생 언론집’ 2권과 편지집을 올해안에 출간할 예정이다.
후속 작업으로 백범의 독립운동과 통일운동, 국가건설 구상과 세계평화사상을 다룬 연구논문집 발간도 계획하고 있다.
작년 12월 백범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金信) 산하 기관으로 출범한 백범학술원은 백범사상과 임시정부 및 한민족 독립운동사 연구, 독립운동 관련 자료수집과 연구서 출간, 학술발표회 개최 등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오는 10월 서울 효창공원에 건립중인 백범기념관이 개관되면, 기념관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백범 학술원은 8일 오후6시30분 서울 한국언론재단 20층 국제회의실에서 ‘백범일지’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 金基哲기자 kichul@chosun.com )
(조선일보/사람들)
●[사람들] 中 작가, 윤봉길 의사 소설 썼다 (2002.05.03)
“정의와 평화를 위해 스스로 죽는 길을 선택한 윤봉길 의사와 같은 영웅은 예산(禮山)과 한국만의 인물이 아닙니다. 이런 영웅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지난달 중국 유수의 출판사인 원후이(文匯) 출판사에서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와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소설 ‘천국의 새’를 출간한 중국 작가 샤녠성(夏輦生·54)씨가 윤 의사 순국 70주년과 한국어판 출간(범우사)을 맞아 방한, 3일 낮 기자회견을 가졌다.
샤씨는 99년에도 윤 의사 의거 이후 자싱(嘉興)으로 피신한 백범 김구 선생의 활동과 중국인 여성과의 사랑을 담은 소설 ‘선월’(船月)을 출간, 한·중 양국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김구 선생을 다룬 ‘선월’을 집필하면서 윤봉길 의사의 4·29 상해 의거를 알게됐고, 스물 넷의 젊은이가 어떻게 이런 큰일을 할 수 있었는지 관심을 갖게됐다”고 했다.
2000년 11월 소설 자료 수집차 한국을 찾았던 샤씨는 윤봉길 의사를 모신 예산 충의사를 참배하면서 영정속의 윤 의사를 대하곤, 눈물을 떨궜다고 한다.
그는 “윤봉길 선생은 참 선량하고, 모친과 처자에 대한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며 “이 모든 사랑을 민족을 위해 묻었을 뿐”이라고 소개한다.
중국작가협회 소속인 샤씨는 원래 자싱일보(嘉興日報)에서 문학판 편집인으로 활동한 기자 출신. 르포 문학과 아동문학 분야에서 30여권의 책을 냈다.
( 金基哲기자 kichul@chosun.com )
(월간조선)
● 발굴-尹奉吉 義士의 최후를 기록한 일본 육군성 극비 문서 「滿密大日記」 (2002.05.06)
처형 직전의 尹奉吉 義士: 『사형은 미리 각오한 것이니 지금에 임하여 아무 것도 해야 할 말이 없다』
「일본어로 하는 말이 명료하고 미소를 짓는 등 그 태도가 극히 담력이 굳세고 침착하였다」(日本 헌병사령관의 보고서)
[편집자 注] 滿密大日記는 尹奉吉 義士가 처형된 다음해인 1933년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총 40여 쪽 분량의 극비 문서이다.
尹奉吉 義士의 刑 집행과 관련하여 刑을 집행한 육군 제9사단과 육군성 사이에 오고 간 각종 공문과 소송 기록, 사형집행보고서, 尹義士의 처형 모습을 담은 사진, 처형장 도면 등이 들어 있다.
尹奉吉 義士 義擧 이후 일본 관헌들이 金九 주석의 행적을 계속 추적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金九 추적 密偵(밀정) 보고서」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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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사이토 조선총독의 행적을 추적하던 車吉辰(차길진) 법사와 「더 채널」 주식회사 金光萬(김광만) 대표가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발견했다.
이 가운데 헌병사령관이 육군 대신에게 보낸 「尹奉吉 사형집행 顚末(전말)에 대한 보고서」, 「尹奉吉의 사형집행 및 헌병의 경계에 관한 보고서」와 「金九 추적 密偵 보고서」의 全文을 소개한다.
尹奉吉 사형집행 전말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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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九 추적 密偵 보고서
문서번호: 1246-1247
소화 7년(1932년) 9월9일. 外事정보.
헌병사령관 秦 眞次(하타 신지)
육군대신 荒木 貞夫(아라키 사다오) 殿.
〈金九 일파 최근 행동. 어느 정도 믿을 만한 밀정의 정보를 종합하면 왼쪽과 같음.
1. 金九 일파는 최근(8월 20일 경) 上海 江西路角(강서로각) 동북의용군 후원회 간부 朱慶欄(국민당 위원회원)을 통해 1만5000달러를 수령하여 동북의용군 지원에 활동한다고 약속하였다고 함.
2. 金九는 그 돈을 수령한 후 李裕弼(이유필), 嚴恒燮(엄항섭), 朴南坡(박남파), 朴贊翊(박찬익), 安敬根(양경근) 등과 謀議한 후 항주 또는 가흥 부근의 시골로 피신 潛伏(잠복)하면서 생계 방법 등을 생각하는 한편 上海를 왕복하는 것으로 보임.
3. 폭탄사건 후 金九 일파 및 이유필 일파의 수령 금액은 약 2만8000달러로 보이며 그 중 1만5000엔은 피신지 官憲(관헌)의 매수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또 조만간 「버스」 파업단을 후원하기 위해 상당한 금액을 제출할 예정으로 보임. (끝)>
번역:고가 사토시(古賀 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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