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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 / 황진이] (1)뭇 남성을 농락하고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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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6-11-17 12:10 조회1,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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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모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황진이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황진이에 대한 문학기행을 옮겨 봅니다. 

 출처는 한국학(옛 디지털 한국) 한국학 Q&A > 함께쓰는 한국학  입니다.

글쓴이의 아이디는 kkhaena 입니다.

 

 

 

황진이(黃眞伊)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기생으로, 본명은 진(眞),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황진이는 사실 베일에 싸여 있는 여인이다. 그녀의 출생과 및 부모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략 연산군 말년에 태어나 1538년(중종 17) 즈음에 명성을 날리고, 1556년경에 40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타고난 미모와 재치로서 지족선사, 서경덕, 이사종, 벽계수, 소세양 등과 교분을 나눈 세기의 연인 황진이는 남성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불세출의 명기이며, 그녀의 모습은 훗날 임제가 그녀의 묘를 찾아 나서듯이 아직까지도 뭇남성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뛰어난 시재를 보인 명기로 그 이름이 높았으며 당당히 시인으로서 대접을 받았던 황진이의 시비(1982년 국어국문학 시가비 건립 동호회 건립)가 임진강 망배단 곁에 우뚝 서 있다. 그녀의 묘는 비무장지대인 장단 구정리에 있지만 파주에 시가비가 있어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황진이는 천한 신분 출신이며, 또 여자로 태어났다 것을 늘 한탄하였다. 아무리 재주와 능력이 있더라도 천하기에 벼슬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여자로 태어나면 귀하든 천하든 한 남성에게 매여 평생을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에서 황진이는 자신을 뽐낼 방도가 없었으므로 기생이 된 뒤에 많은 남성을 거느리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였다. 이를테면 돈이 없는 무지랭이 선비도 상대했고, 체면 차리는 고관을 품에 안기도 했다. 그런 남정네들이 그녀를 정실로 삼을 리 만무하였지만 그녀 또한 그런 남성에 매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황진이가 이 남자 저 남자 상대한 것은 기생신분인 탓도 있었지만, 도대체 한 남자에 매여 시시콜콜 콩이야 팥이야 할 여자가 아니었던 탓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황진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에게 타고난 미모와 재치는 물론 시재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황진이는 뛰어난 시재를 보인 명기로 그 이름이 높았으며 당당히 시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황진이는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으로 인하여 ‘서경덕’, ‘박연폭포’ 등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뭇남성. 그 중에서도 풍류를 아는 시인 묵객들이 그녀를 한번 만나 시를 화답하거나 가슴에 품기를 바랐다. 그녀는 이런 요구에 적당히 응해주었고 때로는 빈 가슴의 한구석을 채워주었다.
황진이는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을 지녔기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하고 있다. ≪송도기이(松都奇異)≫에는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실려 있다.

송공이 어머니를 위하여 환갑잔치를 베풀었다. 서울의 명성이 자자한 기생과 노래하는 여인을 다 부르고, 이웃의 수재와 고관들을 모두 초대하였으니 비단옷에 화장한 여인이 자리에 가득하였다. 황진이는 화장을 하지 않고 담담한 차림으로 자리에 참석했는데, 천연한 태도가 국색으로 광채가 사람을 움직여서 밤이 다하도록 계속되는 잔치 자리에서 모든 손님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송공은 시비를 시켜 가득 부은 술잔을 황진이에게 권하고 가까이 앉아서 독창을 부르게 했다. 황진이는 얼굴을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는데 맑고 고은 노래 소리가 간들간들 끊어지지 않고 위로 하늘에 사무쳤으며, 고음 저음이 다 맑고 고와서 보통 곡조와는 현저하게 달랐다. 이때 송공이 무릎을 치면서 칭찬하기를, “천재로다.” 하였다.

이 일화에는 황진이의 성격이나 용모를 알려주는 단서가 있다. 특히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었지만 성질이 고결하여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고관의 잔치에 참석하더라고 다만 빗질과 세수만 하고 나갈 뿐 옷도 바꾸어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일화가 알려주는 또 다른 사실은 황진이가 극히 뛰어난 외모와 함께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평범한 차림이었음에도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황진이에게 주목했고 그녀의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을 진탕시켰다.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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