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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어록 16(1296년, 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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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12-05 23:00 조회1,50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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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5-1300 몽산 덕이와 고려 인물과의 교류>


○ 1295 (몽산63세) 乙未 충렬왕 21년

겨울에 了庵元明長老, 覺圓上人, 覺性上人, 妙孚上人 등 8人의 道友가 三韓(高麗)으로부터 와서 조용히 지내기를 같이함.

*장ː로(長老)

1.‘나이가 지긋하고 덕이 높은 사람’을 높이어 일컫는 말.

2.불교에서, 지혜와 덕이 높고 법랍이 많은 중을 높이어 일컫는 말.

*상ː인(上人)

지덕(智德)을 갖춘 중을 높이어 일컫는 말.


○ 1296 (몽산64세) 丙申

여름. 中孚上人 등 4人의 道友가 고려로 돌아감

겨울. 고려의 萬壽上人이 왔고, 고려국 내원당대선사 혼구, 정녕원공주왕씨 묘지, 명순원공주왕씨 묘혜, 전도원수 상락공 김방경, 시중 한강, 재상 염승익, 재상 김흔, 재상 이혼, 상서 박경, 상서 유거 등 여러분이 재삼 편지를 보내어 문답함.


*1296년(충렬왕22) 겨울, 원나라 中吳의 休休庵이라는 작은 庵子에 머물고 있던 고승 蒙山德異(1232-?1298)에게 고려의 萬壽上人이 찾아가서, 고려국 내원당대선사 混丘(*일연의 고제), 정녕원공주 왕씨 妙智(*충렬왕비 정화궁주 소생), 명순원공주 왕씨 妙惠(*충렬왕비 정화궁주 소생), 전 도원수 상락공 金方慶, 시중 韓康, 재상 廉承益, 재상 金昕, 재상 李混, 상무 朴卿, 상무 柳(옷의변居) 등 여러 사람이 재삼 만나고자 하는 뜻을 전하였다.


*충렬왕은 1296년 9월부터 1297년 5월까지의 8개월간 공주와 從臣 243인 총 590인을 데리고 세자의 결혼참석과 하정을 목적으로 하여 원나라에 갔다. 즉 1296년 겨울에 몽산에게 고려의 열 사람이 뵙기를 청하였으니 바로 충렬왕의 入元시기와 완전히 일치한다.



<△(김방경 85세) 1296년 충렬왕22>

전에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이 거사(居士) 김방경에게 양칙(兩則)의 법어(法語)를 보내 주었다. 김방경이 양칙(兩則)의 법어(法語)를 항상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위에 놓아두고 서로 바꿔 가며 보았다. 겸해서 게송(偈頌)을 보내 주었고, 또 요요암명(了了庵銘)을 보여 주었다. 김방경이 운을 지어 노래하여,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에게 답하여 글을 보냈다. <동안거사집>.



■ 동안거사집 (이승휴 著, 삼척시 번역 간행)

   전 중봉대부(中奉大夫) 도원수(都元帥)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 광정대부(匡靖大夫)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상장군(上將軍) 판전리사(判典吏事) 세자사(世子師)로 치사한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 식읍 일천호 식실 삼백호 김방경(金方慶)이 만월봉(滿月峰) 요요암(了了庵) 신화상(信和尙)에게 답한 글

*화상(和尙)

1.수행(修行)을 많이 한 중.

2.<중>의 높임말.


   지난 번 보내 준 양칙(兩則)의 법어(法語)를 항상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위에 놓아두고 서로 바꿔 가며 보면서, 보고 음미하며 싫어함이 없었으나, 근기(根氣)가 낮고 용렬해서 아득히 내 코를 찾아도 이해가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감히 그것을 가슴에 새겨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법어(法語)

1.부처의 말씀. 불어(佛語)1.

2.불도를 설교하는 말이나 글.


*<목우자사기(牧牛子私記)>는 보조국사 지눌의 저술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인 듯함. 지눌이 입적하기 한 해 전인 1209년 때의 저술이다. <화엄론절요>와 함께 절요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규봉 종밀의 <법집별행록>을 절요하고 그에 더하여 보조 자신의 견해를 밝힌 사기를 덧붙이고 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한국불교 강원에서의 교과서인 사집(四集) 속에 포함되어서 널리 연구되었기 때문에 많은 간본이 전해온다.


   겸해서 게송(偈頌)을 보내 주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유마(維摩)의 方丈(방장)*1)이 모암(茅庵)을 생각하였고,

금색의 두타(頭陀)가 화담(話談)을 접했도다.

팔만(八萬)의 예상(猊床)*2)을 어디에 놓았던고,

거울 같을 작은 못이 갑자기 와서 비춘다'

하였는데, 이 말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게ː송(偈頌)

부처의 공덕을 기린, 게구(偈句)로 된 노래.


   또 요요암명(了了庵銘)을 보여 주었습니다.

*銘명 

(1) 금석, 그릇, 비석 등에 남의 공적이나 사물의 내력을 새긴 글귀. (2) 기물(器物) 에 제작자의 이름을 새기거나 쓴 것. (3) 마음에 새기거나 써 놓고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어구.

   옛날에 한 노인이 이르기를, "마음이 밝으면 법을 밝게 하고, 자기를 밝게 하면 사람을 밝게 한다. 자기가 밝지 못하면 곧 사람과 자기가 미혹하게 되고, 마음이 밝지 못하면 모든 세계가 마음을 따라 미혹해진다"고 하였고,

   또 한 노인이 있어 말하기를 "만법이 본래 공(空)하니,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이미 있는 것이 아니니 밝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원만해지고, 법이 이미 본래 공(空)하니 밝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항상 적적하다."고 하였고,

   양무위자(楊无爲子)가 또 노래해 말하기를,

"산당(山堂)에 새벽이 되니 백운이 날아오르고,

산당(山堂)에 저녘이 되니 백운이 돌아가도다.

청송(靑松)이 늙음이여 월계(月溪)가 밝네,

밝고 밝지 못함이여 누구와 더불어 알 수 있겠는가?"고 하였고,

   삼단어칙(三段語則)에 이어서 말하기를, "청컨대 거사는 주각(住脚)하라." 하였습니다.

*거사(居士)

1.벼슬하지 아니하고 일반 사회를 멀리하여 살아가는 선비.

2.속인(俗人)으로서 불교의 법명(法名)을 가진 남자. 우바새(優婆塞). 처사(處士). 신사(信士).

   이것은 내 경계(境界)가 아닌데, 내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소. 그러나 내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앞의 두 노인은 각기 한 부분을 찬양하고 무위자(無爲子)는 중간에서 노래했으니, 요요의 뜻이 지극하여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습니다.

   또 한 노인*3)이 있어 자기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운을 이어 지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秋空晴兮孤鳥飛

맑게 개인 가을 하늘에 외로운 새가 날아가니

沒朕迹兮將安歸

내 자취를 숨기며 어디로 돌아가려 하느냐.

廻光炤兮无欠餘

회광반조(廻光反照)*4)함이여 못 미침이 없다네.

名不及兮尋常知

명성이 미치지 않음은 심상하게 아는도다.

내가 한 마디 한 것을 화상은 어떻게 여기는가.

귀위(歸依)할 바를 가르쳐 주길 바랍니다.



<1295-1300 몽산 덕이와 고려 인물과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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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7 (몽산65세) 丁酉

仲春, 法門(十松)景致의 序文을 씀 (十松序)

○ 1298 (몽산66세)

상인을 통하여 萬恒이 몽산의 서문이 있는 <육조대사법보단경>을 구함 (덕이본 육조단경 序)

2월 2일 십송설의 서와 가송의후서를 씀 (십송서)

4월 12일 동안거사 이승휴에게 법어를 보냄 (동안거사집)

○ 1300

고려에서 만항이 덕이본 육조대사법보단경을 간행함 (덕이본 육조단경 서)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이어지는 충렬공 어록 잘 보고 있습니다.
맨 아래 시의 작자(주3)는 누구인지요. 주4의 해설문도 부탁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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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주3 . 한 노인은 충렬공께서 본인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주4.회광반조(廻光反照) :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心性을 反省하여 본다는
불교용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