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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문인록 - 의재 김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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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12-29 16:48 조회1,78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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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재(毅齋) 김제갑(金悌甲)

선조(宣祖)때의 문신(文臣)인 김제갑(金悌甲)의 자(字)는 순초(順初)요 호는 의재(毅齋)이며 본관이 안동(安東)이니 명종(明宗) 즉위 초에 일어난 을사사화(乙巳士禍)때 희생당한 명신(名臣) 김충갑(金忠甲)의 아우이다.

중종(中宗) 19年(1525년) 서울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가 19세때에 선향(先鄕)인 안동(安東)으로 내려와 퇴계선생(退溪先生)의 훈적(薰炙)를 받았으며 사마시(司馬試)를 거쳐서 29세 때인 명종(明宗) 8年(1553년)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여 관직(官職)에 나가게 되었다.

홍문관(弘文館)과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성균관(成均館)의 정자(正字), 수찬(修撰), 전적(典籍), 사서(司書), 직강(直講), 사성(司成)등 여러 관직을 거쳐서 원주목사(原州牧使)에 올랐던 의재(毅齋)는 선조(宣祖) 25年(1592년) 원주성(原州城)을 사수(死守)하다가 순직하니 향년이 68세였다.

선조(宣祖)가 세자(世子)로 있을때, 왕자사전(王子師傳)을 역임한 바도 있는 그가 원주성을 지키다가 순절(殉節)했다는 소식이 조정(朝廷)에 알려지자 선조(宣祖)는 ‘일우고성만고삼강(一隅孤城萬古三綱)’이란 글을 내려 애도(哀悼)하고 충절(忠節)을 찬양하는 한편 영의정(領議政)의 증직과 문숙공(文肅公)의 시호를 내렸다.

그후 현종(顯宗)때에는 고려때 무신(武臣) 원충갑(元冲甲) 상장군(上將軍)과 함께 원주(原州) 충렬사(忠烈祠)에 제향 되었다.

출전: 퇴계문인록(退溪門人錄) (1983년 李熙大 編著)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일우고성만고삼강'은 괴산 능촌리 충민사 내의 구사당에 있습니다.
그런데 장원급제가 아니라 1553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습니다. 원주의 충렬사는 고종때 훼철되어 그 현판은 충민사 구사당에 보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