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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 5세손 習讀公(好文)의 사위 김復輝(光山人)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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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6-12-30 20:02 조회1,703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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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광산인 신독재 김집이 찬한 종조부 김복휘의 묘갈명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것은 김복휘의 어머니인 안동김씨가 상락군 김묘(아래 내용중 李묘는 오타)의6대 손녀이십니다

내용중 김호문(金好文)은 문온공(구용)의 고손이자 사인공(계우)의 손자이십니다

즉 문온공의 손녀 사위인 광산인 김철산의 고손주 며느님이 습독 김호문의 따님(문온공의5대손녀)입니다

*습독 :조선(朝鮮) 때 훈련원(訓練院)의 종9품(從九品) 무관직(武官職)

문온공(구용)-부사공(명리)-3子사인공(계우)-장사랑공(자숙)-습독공(족보에는 학생공)(호문)-女+광산인 金緞

 

                                     -女+김철산--------김국광-------김극뉵---------김종윤---------------김단

MKICN007.gif 묘갈명(墓碣銘)
서윤(庶尹)을 지낸 김공(金公) 복휘(復輝) 의 묘갈명

나의 할아버지에게는 사촌 형제 몇 분이 계셨는데, 통훈대부로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신 공도 그중의 한 분이시다. 공은 휘가 복휘(復輝)이고 자가 길소(吉昭)이다.
우리 김씨의 관향은 광주(光州)이고, 신라 왕자의 후손이다. 고려조에서는 8대가 연이어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기도 하였고, 아조(我朝)에 와서는 휘 약채(若采)가 사헌부 대사헌이었으며, 그로부터 3세 뒤인 휘 국광(國光)에 와서는 의정부 좌의정을 지낸 데다 적개(敵愾)ㆍ좌리(佐理) 두 공신에 책봉되고 광산부원군의 봉호를 받았는데, 이분이 바로 공의 고조이다. 증조는 극뉵(克忸)인데 사간원 대사간으로 예조 참판에 추증되었고, 조부는 종윤(宗胤)으로 진산 군수(珍山郡守)였는데 병조 참의에 추증되었고, 고는 단(鍛)으로 상호군(上護軍)이었다. 비위는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습독(習讀) 호문(好文)의 딸이요, 상락군(上洛君) 이묘(李昴)의 6대 손녀이다.
벼슬살이하는 집안에 태어난 공은 소년 시절에 이미 돈녕부 참봉의 벼슬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얼마 후에 장원서 별제(掌苑署別提)에 임명되면서 관례에 따라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 및 돈녕부 주부로 자리를 옮겼고, 연산 현감(連山縣監)으로 부임했다가 얼마 안가서 그만두고 사복시 주부가 되었으며, 거기에서 다시 사헌부 감찰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 안 있어 또 고창 현감(高敞縣監)으로 부임했다. 얼마 후 그 관직을 그만두고 돌아왔다가 다시 감찰에 임명되었고, 곧 이어 남원 판관(南原判官)에 제수됐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또 곧 감찰이 되었고, 이어 만경 현령(萬頃縣令)으로 부임했다가 만기를 채우고 한성부 서윤으로 승진되었으며, 신묘년(1591)에는 개천 군수(价川郡守)로 부임했다. 이듬해 여름 왜적들이 잔뜩 쳐들어와 왕이 서쪽으로 파천하게 되자 공은 군대를 거느리고 평양(平壤)에서 호종(扈從)하는 행차를 맞이했다. 왕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 공도 그곳에서 일을 도왔는데, 병진(兵陣) 속에서 병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가더니 결국 그해 6월 29일 52세의 나이로 죽었다. 적이 물러간 후 양주(楊州)의 풍양리(豐壤里)로 귀장했다가 임술년(1622) 2월에야 유향(酉向)으로 된 둔덕에다 옮겨 모셨는데, 선조(先兆)를 따른 것이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전광(前光)을 이어받아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다. 급기야 고을을 맡아서는 부모 봉양과 가정 돌보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여러 형제들과 함께 늙어 가시는 어버이를 봉양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다가 불행하게도 전쟁이 나서 어버이 모실 겨를도 없이 자신이 먼저 아침 이슬이 돼 버리고 눈마저 감지 못하였으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의 첫 번째 아내는 왕족인 양원군(陽原君) 이희(李憘)의 딸이자 성묘(成廟)의 손녀였는데, 아내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다 갖추었다. 그러나 두 아들 태생(泰生), 경생(慶生)과 함께 신수경(愼守庚)의 아내가 된 딸을 남긴 채 공보다 23년 먼저 죽었다. 그 후 학생 이상(李尙)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그는 부사(府使) 수철(壽鐵)의 손녀이고 임천(林川)의 훌륭한 가문의 족속이다. 그러나 슬하에 자녀가 없다. 태생은 일찍 죽고 자식이 없어 경생의 둘째 아들 계(棨)를 입양하였고, 경생의 아들은 절(楶), 계(棨), 목(楘)이다. 계의 1남은 익렴(益廉)이고 딸은 황진구(黃震耉)에게 시집갔다. 내외 증손들은 다 쓰지 않았다.
명은 다음과 같다.

재상 집안의 자손으로서 / 相門後裔
왕실의 사위였으니 / 公家坦腹
그 두 아름다움을 다 갖추어서 / 兩美旣全
부귀 영화 누려 마땅하겠지만 / 宜其受祿
정성을 다해 어버이를 봉양하면서 / 潘輿致養
형제들과 가난 속에서 우애를 다졌다네 / 姜被爲樂
공이 했던 일들이 마치 어제인 양 / 餘風未沬
기억에 생생하니 / 故事猶昨
아, 공의 자손이라면 / 嗟爾耳孫
그 점에 힘을 써야겠지 / 曷不勉旃
내 공이 남긴 행적을 적어 / 我摭其遺
천년 만년 두고두고 전하게 하리 / 於千萬年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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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잘 보았습니다. 
=☆= * " ,* "
 (*. .) .*" .* "
  /つつ♂2006년
♡♡♡♡ 멋지게마무리 하세요^^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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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내용중 "이묘(李昴)"부분은 신독재 선생 유고 권8의 원문에는 上洛君昴之六代孫也 로 되어 있는데 번역 과정의 실수라 생각됩니다
^-^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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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셨네요.
새해 강건하시고 만복이 그득하시길 빕니다.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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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또 하나 사실 확인에 축하드립니다.
황금돼지해에 재물과 건강의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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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끝없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학문과  문중역사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