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문집속의 ‘물계서원’ 관련자료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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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1-18 16:04 조회1,560회 댓글2건본문
<蘆洲集 金兌一(1637~1702)의 詩文集>
1. 勿溪書院移建記
金方慶(1212~1300)과 金應祖(1587~1667)를 모신 甘泉 勿溪書院의 移建 시말을 기록한 글. 李光斗의 주도로 移建이 추진되어 1697년 2월 別堂에 位版을 移奉한 후, 林秀瓊, 金著一, 李光畢, 林鳳在 등의 주관으로 일을 시작하여 윤3월에는 役事를 마치고 還安?慰安祭를 거행하였으며, 8월에는 鄭東奎, 南在衡의 주도로 廚庫까지 완성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木齋集 洪汝河의 문집1620-1674 (광해군12-숙종1)字: 百源 號: 木齋>
1. 勿溪書院?金鶴沙時告上洛公文
勿溪書院에 金應祖(1587-1667)를 부묘할 때 金紐(1420-?)에게 고하는 고문이다.
2. 金鶴沙奉安文
勿溪書院에 金應祖(1587-1667)를 봉안하는 글이다.
<訥隱 李光庭의 문집1674~1756 (현종 15~영조 32) 字: 天祥, 號: 訥隱,>
1. 勿溪書院追享奉安文
안동 勿溪書院에 惕若齋 金九容(1338~1384)과 虛白堂 金楊震(1467~1535)을 追享할 때의 봉안문이다
2. 愚川鄭公墓誌銘
愚川 鄭?(1601~1663)의 묘지명이다. 정칙은 안동 출신으로 1627년 進士가 되었으며, 생전에 鶴沙 金應祖, 桑村 金自粹를 勿溪書院에 제향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3. 鶴沙金先生行狀
鶴沙 金應祖(1587~1667)의 행장이다. 김응조는 榮川 출신으로, 본관은 豊山이다. 南川 權斗文, 陶隱 權虎臣에게 수학하였고, 1623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다. 甘泉 勿溪書院과 義山 ?峯書院의 건립을 주도하였고, 사후에 追享되었다.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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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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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학사 김응조를 물계서원에 부묘할때 상락 김뉴에게 고하는 문이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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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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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정말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우뚝 서야 할 서원인데---
홈(김방경란)에 올리겠습니다.
김응조와 김뉴의 관계를 살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