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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님의 한권으로 읽는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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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7-01-20 04:23 조회1,9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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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일본을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1274년부터 본
격적으로 전쟁준비에 돌입하였다. 이때 홍다구는 조선감독관이 되어 조선작업
을 독촉하고 각처에서 뛰어난 사공들을 징집하였다. 그리고 원종이 죽고 층렬
왕이 즉위한 지 사개월 만인 그 해 띠월 드디어 여원연합군은 일본정벌길에 올
랐다.
연합군은 총싸만 명으로 몽고군 및 이찌횐군 2만5천,고려육군 8천,수군 6천7
백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여기에 여진군이 가담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여진군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자 이 병력만으로 9백여 척의 전함을 거느리고 합포를 출발
하였다,
고려군은 도독사 김방경이 중군을 통솔하고 박지량,김혼을 지병마사로 임
개롤 부사로 삼았으며, 김선을 좌군사. 위득유를 지병마사. 손세정을 부사로 임
명하였다. 또 김문비를 우군사로 삼고 나유와 박보를 지병마사, 반부를 부사로
임명한 후 전체를 삼익군이라고 하였다. 한편 몽고는 도원수 홀돈을 원수로 홍
다구를 우부왼수로 유복형을 져부원수로 삼아 군사를 통솔하게 하였다.
연합군은 합포를 떠나 곧 대마도에 도착하여 섬을 장악했으며, 다시 일기도
(一岐島)로 진격하니 일본군이 진을 치고 버티고 있었다, 이에 따라 연합군과
일본군 간에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고. 일본군은 천여 명의 회생자를 내며 대
패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이 다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척 좌부원수 유복형이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하자 연합군은 뱃머리를 돌려 후퇴하
였다. 그런데 퇴각하던 날 밤에 폭풍이 몰아쳐 많은 전함들이 과손되고 군사들
이 수장되는 바람에 연합군은 황급히 귀환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원정에 실패한 원의 쿠빌라이는 12깐년에 다시금 일본정벌
을 독촉한다. 하지만 이때 위득유 등이 김방경이 갑옷을 감추고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바람에 김방경은 홍다구로부터 고문을 받
고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쿠빌라이 앞에서 결백을 증언하썩 풀려난다.
제2차 일본정벌은 한동안 연기되다가 1280년에 일본정벌을 위한 기구인 정
동행성이 세워지케 이듬해 3뭘에 재개된다.
제2차 원정에서는 김빙쩡이 이끄는 고려군,혼도와 홍다구가 이끈 몽고군과
한군 등 총 5만 군대가 선발대로 출발했고 범문호가 이끄는 강남군 I0만이 후
발대로 출발했다. 이들 연합군 15만은 다시 한 번 일본 본토를 노렸으나 홍다구
가 이끄는 몽고군이 크게 꽤하고 후발대로 도착한 범문호의 남만군 10만이 8월
에 폭풍을 만나 모두 수장되는 바람에 대괘하고 들아왔다. 이때 김방경의 뛰어
난 통솔로 고려군의 피해는 비교적 적었으며, 밀물과 썰물에 밀려 다니는 남만
군 I0만의 시체 패문에 합포 포구는 온봉 시체로 가득 찼다고 한다.
이렇듯 1, 2차 원정에서 일본에 대패하자 쿠빌라이는 정동행성의 기능을 더
욱 강화하여 일본정벌에 혈안이 된다. 이 때문에 고려는 막대한 물질적 피해와
노동력 손실을 입게 되어 누차에 걸쳐 일본정벌계획을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
다. 하지만 쿠빌라이는 1291년에 죽을 때까지 일본원정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쿠빌라이가 죽자 원나라 내부에서 일본정벌이 불가함을 주장하
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승상 완택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일본정벌 계획은 중
단되었다.
하지만 일본정벌을 위해 만들어졌던 정동행성은 여러 차례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다가 1299년부터는 고려와 원을 연결하는 교량적 기구로 변모되었고 공
민왕대에 가서야 비로소 타과된다.
쿠빌라이가 그토록 일본을 정벌하고자 했던 것은 그 스스로가 일본에 보냈
던 조서에서 밝힌 대로 후대에 이름을 남기기 위한 명예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1r6년에 그 동안 양자강을 버팀목으로 겨우 지탱하던 남송이 무너지자 동북아
에서 일본만이 원에 조공을 받치지 않은 유일한 나라로 남게 되었다. 쿠빌라이
는 이 점이 마음에 걸려 끊임없이 일본정벌을 추진했지만 해군력이 약한 몽고
군으로서는 일본 정벌은 무리였다. 일본은 이패 자신들을 지켜준 태풍을 일러
,가미가제,즉띤별神料이라고 불렀으며.이 명칭은 태평양전쟁 때에 자살특
공대의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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