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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묘소에 근접한 김해의 묘소 이장관련 일기 소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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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1-22 09:26 조회1,46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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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溪巖日錄>四.  丙寅  九月 十五日

 曉, 兒輩行禰祀, 朝遣伯兒入縣, 仍見監司及昌樂, 以時讓難者, 不可不謝矣,

 (이후 번역 생략)午李皦 李皖 李皊等過, 仍傳李興海 浩然書, 皦字光遠, 皊字薰遠, 皆浩然姪, 皖字文遠, 浩然子也, 夕南以侃 鄭士達過, 仍傳鄭孝翼書, 皆慶州人.


    <계암일록> 4. 1626(인조4)년 9월 15일

 새벽에 아이들이 사당에 제사를 봉행하다. 아침에 큰아이를 현에 들여보냈다. 거듭 감사와 창락(昌樂-찰방)을 뵈려 하자 시양으로서는 난처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생략)


8) <溪巖日錄>四.  丙寅  九月 十五日

○監司是日, 向榮川至洪亭, 怒榮郡宰 宋爾昌不來迎, 大怒急召昌樂察訪, 令於眼前, 跨馬先馳, 立奪郡守印, 而封官庫罷黜之, 須及吾行未至, 不然有悔, 昌樂如其言, 瞥眼間已至, 宋方出郊迎候, 昌樂急收印封庫, 監司已至矣, 此等擧措, 顧何如哉.


 <계암일록> 4. 1626(인조4)년 9월 15일

  감사는 이날 영천을 향하다가 홍정에 이르렀는데 영천군수 송이창이 맞이하지 않자 화를 냈다. 크게 노하여 급히 창락 찰방을 불러 안전에서 명령하기를 ‘ 먼저 말을 달려가서 군수의 인장을 빼앗고 봉고파직하라’고 하였다. 잠간동안 우리 일행이 미처 도착하지 못하여 자연스럽지 못하게 된 것을 후회하였다. 창락은 그 말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도착하였고, 송은 바야흐로 교외로 나아가 이를 맞이하여 인사하려 했는데, 창락은 급히 인장을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 감사는 나중에 도착했다. 이런 등등의 행동거지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매일 연재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업무 관계로 사나흘 우리 홈에 못 들어옷 것 같습니다.
귀한 자료 올려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