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묘소에 근접한 김해의 묘소 이장관련 일기 소개(8-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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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1-23 11:10 조회1,421회 댓글3건본문
與諸兄弟, 往知禮展掃. ○監司 金時讓, 以眞寶 縣監 李榮仁, 爲發墓差使員, 而到家聞差使員入縣云.
<매원일기> 10. 1626(인조4)년 12월 29일
여러 형제들과 함께 지례에 가서 성묘하고 소분하였다. 감사 김시양이 진보(眞寶) 현감 이영인을 발묘 차사원(差使:임금의 영을 시행하는 관원)으로 삼았다. 집에 도착하여 들으니 차사원(이영인)들이 현에 들어갔다고 한다.
*편집자 주 : 이후 김해의 묘소는 중앙 조정의 공식적인 명을 받은 진보현감 이영인의 이장 계획에 의거, 상기의 일기 2개월 후인 1627년 2월, 결국 이장하게 됐음)
10) 梅園日記 十一 丁卯 七月 十三日
○至暮聞監司 金時讓來注書宅云矣, 有相議事, 乘月暫拜掌令叔侍
<매원일기> 11. 1627년 7월 13일
저녁에 이르러 감사 김시양이 주서댁에 왔다는 말을 듣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달이 있는 동안 잠시 장령숙부를 모시고 뵈었다.
*김해의 묘지명에 있는 김해 묘소 이장 내용 요약
1)1626년(인조4) : 감사 김시양의 이장 요구
2)1627년(인조5) 2월 : 임시 재실(齋室)의 뒤쪽 산기슭에 안치
3)1627년(인조5) 12월 : 거음곡(居音谷) 신좌 을향(申坐乙向)의 자리로 이장(移葬)
4)1668년(현종9) 4. 24. : 송음동(松音洞) 유좌(酉坐)로 이장
*김해의 묘지명 내용의 일부
출전 : <국조인물고> 이현일(李玄逸) 지음
천계(天啓) 병인년(丙寅年 1626년 인조 4년)에 상락공의 후손으로 본도(本道)의 감사(監司)로 부임한 자가 있어 강제로 선생의 묘소를 옮기라고 하여 그 이듬해 2월에 임시 재실(齋室-?)의 뒤쪽 산기슭에다 안치해 놓았다. 그때 마침 나라 안에 전쟁이 나 묘지를 택하여 안장하지 못하였다가 전쟁(정묘호란-1627년 1월 중순-3월 초)이 끝난 뒤에 거음곡(居音谷) 신좌 을향(申坐乙向)의 자리로 이장(移葬)하였는데, 때는 12월 아무날이었고, 그 뒤 무신년(戊申年 1668년 현종 9년)에 풍수가(風水家)의 말에 따라 또 송음동(松音洞) 유좌(酉坐)의 자리로 이장하였는데, 그 날짜는 4월 24일이라고 한다.
----------연재 종료------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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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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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충렬공묘소 실전과 되찾음을 명확히 정리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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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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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연일 흥미진진한 내용이었습니다
정리되어 정설로 굳혔으면 좋겠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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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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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생생한 자료 감사합니다.
제주 아저씨와 평택 아저씨 또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