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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 김시양 연구(석사학위 논문)-본론 (47-하담시의 문학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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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1-28 07:55 조회1,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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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문장을 證明할 수 있는 일화가 또 있다. 仁祖 19년에 『宣祖實錄』을 개수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때 澤堂 李植과 摠裁大臣 洪瑞鳳이 계하여 말하기를 “수사의 일을 함에 당하여 典故를 잘 알고 筆削을 증명하여 정하려면 金某의 도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 하였다. 荷潭이 연달아 箚를 올려 사양하자 상감께서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번의 수사는 卿이 아니면 걱정이 되며 듣건대 안 된다고 하니 나의 바램에 부응하여 굳이 사양하지 말라” 고 하였다.1)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는 높은 義와  우뚝한 氣를 가진 直節淸明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문 4대가인 月沙. 象村. 谿谷. 澤堂의 4名 중에서 谿谷과 澤堂은 친구이며, 그들과 시문을 주고받을 정도의 文學的 수준을 갖추었다. 또한 象村의 아들 申翊聖도 친구로서 게를 擬人化하여 보낸 시가 두 수 있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澤堂이 先祖實錄 편찬에 참여토록 권유한 사실만 보아도 그의 文學的 素養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金台俊이 『朝鮮漢文學史』에서 荷潭이 쓴 隨筆集 『荷潭破寂錄』과 『紫海筆談』, 『涪溪紀聞』이『慵齋叢話』와 함께 가장 勝作이라고 밝혔다.2) 이 사실만 보더라도 하담은 漢文學史에서 높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荷潭이 가지는 文學史的 意義는 唐詩風의 潮流 속에서 풍부한 자신의 情感을 실은 唐詩風의 시 경향과 脈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하여 荷潭 金時讓은 漢文學史에서 朝鮮中期 文壇의 한 詩人으로서 굳게 자리 매김 하고 있으며, 漢詩史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인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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