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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 김시양 연구(석사학위 논문)-결론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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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1-29 10:02 조회1,4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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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Ⅴ. 結 論

이상에서 朝鮮의 淸白吏로만 알려져 온 荷潭의 詩世界를 알아보았다. 朝鮮 中期 漢文學史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荷潭 金時讓(1581~1641)은 368수의 漢詩와 『涪溪記聞』,『紫海筆談』,『荷潭破寂錄』등의 隨筆集을 남겼다. 그 作品 속에는 문예적인 價値를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아직 漢文學界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수 없이 많다. 본 考에서는 荷潭詩 文學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 제Ⅰ장에서는 荷潭文學의 硏究 目的을 밝혔고, 제Ⅱ장에서는 荷潭의 時代的 背景과 生涯와 交遊, 그리고 그가 남긴 散文 作品들을 통하여 그의 詩文學 世界를 탐색하였다.

첫째, 그가 살았던 時代는 朝鮮中期로 社會史的 면이나 思想史的 면에 있어 큰 변혁을 가진 時代로 특히 黨派의 격한 대립 구도 속에서 그의 生涯 역시 순탄치 못하였다. 임금을 비방하는 시제 사건으로 12년간의 流配生活 속에서 왕성한 文學創作을 하였다.

둘째, 그의 交遊 關係는 지위와 연령의 高下, 신분의 貴賤과 무관하게 넓고 자유로웠으며 文學的 경향에 있어서는 唐詩風을 선호한 文人들이었다. 성품도 또한 모두가 강직하고 절개를 가진 學問的 素養이 높은 인물들이었다.   

셋째, 그의 生涯는 朝鮮의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壬辰倭亂과 丙子胡亂, 丁酉再亂의 변란을 겪었으며 어려서부터 남달리 숙성하여 行動과 말하는 것이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모두 훌륭한 그릇이 될 것이라고 알았다. 13세와 14세에 부모님을 연달아 잃고 늦게 16세에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몇 해 되기도 전에 예원에서 그와 경쟁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25세 선조 38년 (1605)에 정시문과에 등과 하였으며, 光海 2년에 동지사 서장관으로 연경을 다녀온 후 見聞錄을 올렸다. 明나라와 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水路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1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보였다. 

光海의 政治가 어지러워질 대로 어지러워진 시기에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試題事件에 연루되어 함경도 鐘城으로 流配를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7년 동안 流配生活을 하다가 영해로 移配되어 5년 동안 生活하였다. 流配期間 12년 동안 그는 가장 많은 詩를 知人들과 酬唱하였다. 그는 암울했던 流配生活을 詩로 달래며 生活했다. 이 時期에 漢文四大家로 불리는 澤堂 李植과 谿谷 張維와, 申欽 象村의 아들 申翊聖, 許筠, 任叔英, 친척인 孤山 尹善道 등과 交遊하였는데 모두가 强直한 성품을 지닌 당대 최고의 文章家들이었다. 12년간의 邊方 鐘城과 영해에서의 流配生活은 苦痛의 세월이었지만 이 시기가 그에게는 文章家요 詩人이 될 수 있었던 時期이기도 하다. 그의 시와 수필 작품은 대부분 이때 저술 되었는데, 『涪溪記聞』, 『紫海筆談』, 『荷潭破寂錄』, 「壬子日記」, 「雜著」,「漢詩」 등이 그것이다.

1623년 仁祖反正으로 다시 조정에 돌아온 그는 예조 · 병조의 정랑을 시작으로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이등공신이 되었다. 反正공신들이 宦界에 포진해 있던 어려운 時代임에도 불구하고 內外의 要職을 두루 맡으며 國內外의 政治的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오직 淸廉潔白과 滅私奉公의 精神으로 관직에 임했던 淸白吏로서의 올곧은 姿勢와 光海때와 仁祖의 노여움으로 모두 세 번의 귀양을 떠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仁祖로부터 知遇를 입어 判中樞府事에 숭록대부까지 올랐으며, 淸白吏에 錄選되었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병이 심해져 사직 후 忠州의 사제로 돌아와 自然과 벗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며 주희의 學問에 심취했으며, 한유의 詩를 좋아했다. 그는 고질병이 점점 쇠약해졌어도 새벽이면 『孟子』를 암송하였으며 朱子와 韓愈의 文章에 생각을 붙였다. 屬纊하는 날 아침까지 『孟子』의 「萬章」 한 편을 평상시와 다름없이 암송하였다.

仁祖反正으로 다시 벼슬길에 올라 文章과 중망에 올랐으며 判中樞府事까지 지내면서 파란만장한 관직 생활에도 불구하고 文章과 詩文에도 열중한 文人이었던 것이다.

제 Ⅲ장에서는 荷潭의 詩世界를 살폈다. 金台俊이 隨筆集 중에서 『慵齋叢話』와 함께 가장 勝作이라고 밝힌 『涪溪記聞』,『 紫海筆談』, 『荷潭 破寂錄』세 隨筆集과 漢詩를 통해 그의 文學觀을 살펴보았다. 荷潭의 漢詩는 총 368수로 전체를 주제별로 나누면 憂國愛民과 現實批判, 流配地에서의 삶과 憂愁, 돈독한 友情, 가족에 대한 情恨으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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