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문집속의 백곡(김득신)선조님-4- 동명선생집 -정두경(鄭斗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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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1-29 11:31 조회1,606회 댓글1건본문
東溟先生集卷之四 정두경(鄭斗卿)
因朴安陰寄金子公 得臣
住處溪山好。年來信使疏。聊因五馬去。爲寄一行書。
二月花開未。高堂燕到初。應成投轄飮。明府且停車
정두경(鄭斗卿)
1597(선조 30)∼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회(晦)이며, 어머니는 광주정씨(光州鄭氏)로 사헌부장령 이주(以周)의 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이다.
할아버지 지승(之升)과 증조부 담($담03), 종증조부 염(#염11)·작(碏)은 모두 시인으로 이름이 났다.
14세 때 별시 초선(初選)에 합격하여 문명을 떨쳤다.
1626년(인조 4) 문학으로 이름있는 중국의 사신이 왔을 때 그는 벼슬없는 선비로서 부름을 받아 김류(金#유15) 등과 함께 중국 사신을 접대하였다.
1629년 별시문과에 장원, 부수찬·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북방의 호족(胡族)인 청나라가 강성하여지자 〈완급론 緩急論〉을 지어 무비(武備)의 급함을 강조하였다.
병자호란 때 척화·강화의 양론이 분분하자, 그는 10조(條)의 소를 올려 대책을 강조하고, 또 〈어적십난 禦敵十難〉이라는 글을 지어 올렸으나 조정에서 채택하지 않았다.
그뒤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고 〈법편 法篇〉·〈징편 懲篇〉 등 2편의 풍시(諷詩)를 지었다.
효종이 즉위하자 임금이 하여야 할 절실한 도리를 27편의 풍시로 지어올려 효종으로부터 호피(虎皮)를 하사받았다.
그뒤 1656년(효종 7)에 〈칠조소 七條疏〉와 〈원이설 原理說〉을 지어 올렸다.
1669년(현종 10) 홍문관제학을 거쳐 예조참판·공조참판 겸 승문원제조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노병으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이조판서·대제학을 추증하였다.
저서로는 《동명집》 26권이 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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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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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연일 백곡공 관련 시문 발굴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