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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정철] (5)시내 남쪽 나뭇가지에 달이 걸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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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1-29 11:32 조회1,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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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학기행/정철] (5)시내 남쪽 나뭇가지에 달이 걸렸다네

 

또한 송강은 연시조 <훈민가> 18수를 순수한 우리말로 지어서 백성들이 누구나 쉽게 익혀 부를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현재는 16수가 전해진다. 계몽적인 성격을 띤 <훈민가>를 한 수 들어보자.

오날도 다 새거다, 호믜 메오 가쟈사라.
내 논 다 매여든 네 논 졈 매여 주마.
올 길해 뽕 따다가 누에 먹켜 보쟈사라(인터넷에서 깨지는 글자 현대어로 바꿈).

(오늘도 날이 다 밝았다. 호미 메고 (들로) 가자꾸나. 내 논을 다 매거든 네 논도 매어 주마.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다가 누에도 먹여 보자꾸나.)

이 시조는 서로 협동하며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다. <훈민가>의 창작 의도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유하는데 있었지만, 송강은 사대부 계층의 선험적인 가치 체계를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명령하는 어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즉 백성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정감 어린 어휘들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제재들을 다룬 어떤 작품들보다도 강렬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송강은 관찰사 임무를 수행하면서 도내 여러 폐단들을 시정․개혁하고, 영월 땅에 표석도 없이 버려진 단종의 묘를 수축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며, 지방관을 독려하기 위해 <고을의 관리들을 깨우쳐 인도하는 글(諭邑宰文)>을 짓기도 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강원도 내 민풍을 크게 진작시겼다.
송강은 시조를 통해서 예민한 감각을 더 생동하게 나타내지만 그의 한시도 이에 못지않다. 송강의 재치가 넘치는 <산속 절에서 밤에 한 수 읊다(山寺夜吟)>라는 한시를 살펴보자.

우수수 나뭇잎 지는 소리를,
성근 빗소리인줄 잘못 알고서.
중을 불러 나가 보랬더니,
시내 남쪽 나뭇가지에 달이 걸렸다네.

절구에 능한 정철의 대표작으로 시의 제재는 낙엽지는 소리이다. 을씨년스런 낙엽소리를 의식하는 산사의 고요에 잠겨, 덧없이 비소리를 짐작하고, 중에게 나가보라는 엉뚱한 시상 전개가 재치 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쉬운 시이지만 감각적인 표현 때문에 아주 산뜻하다. 특히 비가 오기는 커녕 달이 나뭇가지에 걸렸다는 기지의 표현이야말로 이 시의 묘미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표현했다고 해서 그가 새로운 한시의 길을 개척하였던 아니다. 한시는 이미 표현 가능성을 거의 다 시험했으며, 당시에까지 거듭 축척된 규범을 바꾸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정철의 재능을 한시보다는 시조에서 거리낌 없이 살릴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591년(선조 24년)에 들어서자 정철은 세자 책봉 문제를 건의한다. 그러나 이산해의 모해로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고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명천으로 정배되었다가, 곧이어 진주(晋州)로 옮기라는 명이 내린 지 사흘 만에 북녘 땅 강계(江界)로 유배되었다. 거처 주위에 가시 울타리까지 쳐지는 혹독한 귀양살이의 대부분을 송강은 독서와 사색으로 보냈다.

그런 중에서도 송강의 스캔들은 그치지 않았다. 이 당시에 송강과 진옥(眞玉 선조 때 기생)의 사랑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진옥은 본래 이름 없던 강계의 기생이었다. 그녀가 기생으로서 이름을 떨친 것은, 유배생활을 하던 일세의 문장가 송강과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부터이다. 정철이 강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우울과 실의와 비탄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더러는 적소의 울분을 술로 달래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가을 밤, 송강의 처소에 묘령의 여인이 방문한다. “소첩은 기생 진옥이라 하옵니다. 벌써부터 대감의 명성을 들었사옵고, 더욱이 대감의 글을 흠모해온 천녀(賤女)이옵니다.”라고 하며, 정철의 노래를 가야금으로 타 올릴 것을 청한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내 마음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뿐인데,
나를 따라 또 한 해를 넘는구나.

정철은 진옥의 비범함에 놀랐다. 그날부터 정철은 유배생활이 조금도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진옥의 가야금과 얘기 속에 풀어가며 진옥에게 끌려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단순한 기녀가 아니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여인이었다.
출처 : 본인의 노하우/상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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