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관성씨순례4.(청주김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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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5-16 17:47 조회1,613회 댓글0건본문
● 분관성씨순례Ⅳ.(청주김씨)
청주김씨의 유래.(상기 족보 pp274∼275)
---청주김씨는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신라의 종성이다. 원래 청주는 상고마
한땅으로서 백제시대에는 상당현이라 하였고 낭비성(娘臂城)으로도 불렀다. 서
기 7세기부터 신라의 영역이 확정됨에 따라 나당간에 문물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자성(漢字姓)을 수용해 왔고 지방행정조직은 삼국통일전후로 점차 정비되어
9주5소경제로 갖추어지면서 신라 신문왕 5년(서기685년)에 서원소경(청주)에 문
신인 아찬 김원태로서 처음으로 소경장관을 삼으며 도민정책(徒民政策)에 의해
경주중앙귀족을 집단 이주하게 하고 함께 파견되었던 외관들도 임지에서 그대
로 정착하도록 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에는 지방세력이 가장 강한 청주지역에
서 김근렴은 왕건의 고려 건국에 선력부위(宣力扶衛)한 개국공신으로 수사도삼
중대광의 벼슬을 받았고 김언규는 고려개국충현지사로 첫 조각자리에 등용되었
다. 김극률의 두 딸은 각각 고려 혜종과 정종이 왕비로 삼은 바 있으며 김덕렴
은 김근렴의 7세손으로 고려 전기에 큰 세력을 떨친 바 있었다. 김예종과 김희
일은 4촌간으로 시장에 해당되는 당대등직을 지냈고 김희일은 현재보존(국보
제41호)로 되어 있는 용두사철당간(청주시 남면(문)로2가 소재) 주건(鑄建)을 맡
아 주민과 같이 이룩하였고 고려중기에 김보는 섭교위를 거쳐 금오위대장군을
지냈으며 무신란후로는 청주구봉산하오동촌에서 세거해 오다. 그 후손들은 전
라도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등지로 분산전거해 온 명문의 귀족
으로 전해온다.
= 우리 안동김씨대동보와는 사믓 다른 내용으로 또 다른 청주김씨가 있는듯 합
니다. 경순왕 아들중 김정이란분이 있다는 것도 확인하기 곤란하고요.
《다음은 분관성씨순례Ⅴ영해김씨편입니다.》
※
▣ 김태서 -
▣ 김항용 -
▣ 김주회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청주김씨의 유래.(상기 족보 pp274∼275)
---청주김씨는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신라의 종성이다. 원래 청주는 상고마
한땅으로서 백제시대에는 상당현이라 하였고 낭비성(娘臂城)으로도 불렀다. 서
기 7세기부터 신라의 영역이 확정됨에 따라 나당간에 문물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자성(漢字姓)을 수용해 왔고 지방행정조직은 삼국통일전후로 점차 정비되어
9주5소경제로 갖추어지면서 신라 신문왕 5년(서기685년)에 서원소경(청주)에 문
신인 아찬 김원태로서 처음으로 소경장관을 삼으며 도민정책(徒民政策)에 의해
경주중앙귀족을 집단 이주하게 하고 함께 파견되었던 외관들도 임지에서 그대
로 정착하도록 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에는 지방세력이 가장 강한 청주지역에
서 김근렴은 왕건의 고려 건국에 선력부위(宣力扶衛)한 개국공신으로 수사도삼
중대광의 벼슬을 받았고 김언규는 고려개국충현지사로 첫 조각자리에 등용되었
다. 김극률의 두 딸은 각각 고려 혜종과 정종이 왕비로 삼은 바 있으며 김덕렴
은 김근렴의 7세손으로 고려 전기에 큰 세력을 떨친 바 있었다. 김예종과 김희
일은 4촌간으로 시장에 해당되는 당대등직을 지냈고 김희일은 현재보존(국보
제41호)로 되어 있는 용두사철당간(청주시 남면(문)로2가 소재) 주건(鑄建)을 맡
아 주민과 같이 이룩하였고 고려중기에 김보는 섭교위를 거쳐 금오위대장군을
지냈으며 무신란후로는 청주구봉산하오동촌에서 세거해 오다. 그 후손들은 전
라도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등지로 분산전거해 온 명문의 귀족
으로 전해온다.
= 우리 안동김씨대동보와는 사믓 다른 내용으로 또 다른 청주김씨가 있는듯 합
니다. 경순왕 아들중 김정이란분이 있다는 것도 확인하기 곤란하고요.
《다음은 분관성씨순례Ⅴ영해김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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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서 -
▣ 김항용 -
▣ 김주회 - 감사합니다.
▣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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