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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계서원 이건 봉안문 - 목재 홍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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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2-25 08:45 조회1,52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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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계서원 이건 봉안문(勿溪書院 移建 奉安文)

대사간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지음


화산(花山) 높고 푸르르며 낙동강 물 맑게 흘러

지령(地靈)길러 정기(精氣)모아 신선(神仙)에서 하강(下降)하니 단우(壇宇)도 넓고 넓다.

세상(世上)에 드믄 재주 문무(文武)를 겸비(兼備)하니

때마침 태어나사 몸바쳐 보국(輔國)할제

곧은 기풍(氣風) 충천(沖天)하고 엄숙 강기(嚴肅綱紀) 떨쳤도다.

총마 어사(驄馬御史) 나가실제 죽절(竹節)같이 곧은 충성(忠誠)

신명(神明)도 감동(感動)하고 만백(蠻백=오랑캐)도 순종(順從)하다

정의(正義)세워 역적토벌(逆賊討伐) 괴수(魁首)잡아 목을 베니

인륜(人倫)좋은 동국(東國)땅에 어진 장상(將相) 위풍(威風)밝혀

동해(東海)로 군려(軍旅)떨쳐 파도(波濤)가 조용하고

생령(生靈)은 덕(德)을 입고 사직(社稷)은 혈기(血氣)찾아 미관 피발(微管被髮) 본받으니

태산(泰山) 북두(北斗) 높은 명성(名聲) 우주(宇宙)를 덮은 공적(功績)

사후 조두(死後俎豆) 마땅하고 향방(鄕邦)이 추모(追慕)하니

성사(盛事)에 운수(運數)있어 五百년 지낸 후에

부용산(芙蓉山) 기슭에 엄연(儼然)한 정사(精舍)있어

맑은 사당(祠堂) 오가(五架)로다 거북점(龜筮) 이미 치고

좋은 날 선택(選擇)하고 어진 선비 모여드니

공중(空中)에 도는 향연(香煙) 휘황(輝煌)하게 밝은 촛불

방불(彷彿)하신 그 영풍(英風)은 천만세(千萬世)를 두고 두고

나의 초예(蕉荔) 흠향(歆饗)하고 후생(後生)들을 도우소서


홍여하 (洪汝河 1621∼1678(광해군 13∼숙종 4))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木齋)·산택재(山澤齋). 본관은 부계(缶溪). 1654년(효종 5) 진사에 급제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사간원 정언(正言) 때 시사(時事)를 논하다 좌천되어 사퇴하였다. 1658년 경성판관으로 복직되었으나 그가 올린 상소문에서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하여 유배되었다. 그 뒤 고향에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가 남인(南人)이 정권을 잡자 다시 병조좌랑·사간을 지냈다. 주자학에 밝아 당시 사림의 종사(宗師)로 일컬어졌다. 1689년(숙종 15) 부제학에 추증되고, 상주(尙州) 근암서원(近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목재집》 편서로《주역구결(周易口訣)》,《의례고증(儀禮考證)》,《사서발범구결(四書發凡口訣)》,《휘찬여사(彙纂麗史)》,《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 등이 있다.


생각건대 물계서원(勿溪書院)은 옛날 감천현(甘泉縣) 서북 이십리(西北二十里) 물한촌(勿閑村)에 있었는데 학사 김공 응조(鶴沙 金公應祖)의 건의(建議)로 사당(祠堂)을 세워서 충렬공(忠烈公)을 봉향(奉享)하다가 경술(庚戌)년에 와서 학사(鶴沙)를 또 배향(配享)하였다. 정축(丁丑)년에는 一도(道)의 선비들이 “서원(書院)으로써 현(縣)의 한 구석에 있고 기지(基址)가 온당(穩當)치 못해서 영원(永遠)한 봉안(奉安)에 험(欠)이 있다.”하여 드디어 발의(發議)하고 현(縣)의 서쪽 三리(里) 가량 되는 고방산(苦方山)밑 천전리(泉田里)로 이건(移建)하니 천전은 곧 지금의 안동부내 감동(安東府內 甘洞) 물한촌(勿閑村)이며 현재의 경북 예천군 감천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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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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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계서원 이건 봉안문,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홈 김방경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