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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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3-03 23:01 조회1,527회 댓글2건본문
<1274년 10월20일 야간 작전회의>
[연합뉴스 2007-03-02 15:26]
정순태씨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차 일본정벌에 나선 여몽연합군 수뇌부는 1274년 10월20일, 야간 작전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서 고려군 사령관 김방경은 주간 상륙전의 여세를 몰아 하카타 연안에 배수진을 치고 계속 공략에 나서야 하며 그래야만 이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몽고군 수뇌부인 흔도와 홍다구가 "피곤한 군사를 몰아 적지 깊숙이 들어갈 수는 없다"고 반대했다. 결국 이런 주장이 먹혀들어 연합군은 하카타항으로 귀향했다.
이런 그들을 기다린 것은 일본군이 아니었다. 태풍이었다. 하카타로 귀환한 그날 밤과 다음날 새벽에 '가미카제'가 몰아쳐 함대 대부분이 난파했다.
7년 뒤인 1281년에 시도한 2차 정벌 역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 때 연합군은 흔도와 홍다구, 김방경이 지휘하는 동로군과 남송 투항병들로 구성된 강남군으로 나뉘었으나, 이 중 강남군은 농민이었기에 휴대한 무기는 주로 농기구으로 전력이 말이 아니었고 이때 역시 태풍으로 정벌은 허무하게 끝났다.
기자 출신 역사작가 정순태씨는 이 사건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근간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김영사 펴냄)에서 김방경의 계책을 채택했더라면 이후 일본의 역사가 크게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랬다면 그것은 왜구의 오랜 해코지에 대한 응징이요, 향후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를 위한 예방 전쟁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군사를 제때 쓰지 못함으로써 정벌 실패는 일본에는 교훈을 주지 못했으며, 그것이 종국에는 임진왜란으로, 나아가 일본의 조선 강점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고려군이 몽고의 위세에 눌려 수동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나섰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208쪽. 9천900원.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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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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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충렬공 관련 신작 소설 소개에 감사합니다. 정순태씨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김영사 간). 208쪽. 9900원. 구입해 보겠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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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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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요즘은 시간내시기가 어떠신지요. 뵌지 오래되었습니다.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