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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암(김찬)선조님 자료-6-답김상서숙진찬(答金尙書叔珍瓚 )=설월당 김부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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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7-03-21 10:56 조회1,42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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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尙書叔珍瓚


端月中。謹因令姪所傳。伏承遠垂訊字。兼示縷縷。仍審來覲西原。起居康吉。無任感慰。

但道路修夐。不得以時奉謝。徒增悵恨。卽日春和。伏惟。令體益膺多福。往者。

劉摠兵二年于東。雖不能掃滌妖氛。敵勢之更不充斥。莫非其功。而摠兵今已歸矣。

鴨江祖道。悵惘當如何。伏覩謄示別詩諸篇。令人亦爲之黯然也。富倫粗保癃羸。

料理舊業。頗以爲適。而閭閻憂歎之聲。饑饉之色。不絶於耳目。愁歎柰何。

餘非片紙可悉。惟冀爲國加愛

출처; 雪月堂先生文集卷之三   김부륜(金富倫) 1531(중종 26)∼1598(선조 31)

김부륜(金富倫)
1531(중종 26)∼1598(선조 31).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돈서(敦敍), 호는 설월당(雪月堂).
아버지는 생원 유(綏)이며,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수홍(粹洪)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5년(명종 10) 사마시에 합격, 1572년(선조 5)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85년에 전라도 동복현감(同福縣監)으로 부임하여 향교를 중수하고 봉급을 털어 서적 8백여책을 구입하는 등 지방교육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또 학령(學令)수 십조를 만들어 학생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산을 털어 향병(鄕兵)을 도왔고, 봉화현감이 도망가자 가현감(假縣監)이 되어 선무에 힘썼다. 그리고 관찰사 김수(金晬)에게 적을 막는 3책(三策)을 올렸는데, 충심이 지극한 내용이었다.
김성일(金誠一)·이발(李潑)과 도의를 강마하였으며,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향리에 설월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대학》과 《심경》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예학에 대해서도 사우간에 많은 질의가 있었다.
저서로는 《설월당집》 6권이 있다



댓글목록

김좌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좌회
작성일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