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은 김부민과 동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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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7-03-20 19:21 조회1,608회 댓글1건본문
대동운부군옥4
권문해 | 남명학연구소 경상한문학연구회 | 소명출판 | 2003년 06월 30일
김부민(金富民)609) 김부민(金富民):고려의 문신으로 지경원군사(知慶源郡事)를 역임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 권
신 이자겸(李資謙)과 사돈간이었으나 그에게 아부하지 않고 척준경과 함께 이자겸을 잡았다
금녕김씨 관계 기록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의 8세손이라 하는데, 시조의 아들로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기여한 원정공(元靖公) 김향(金珦)이 있다. 서리(胥吏)에서 몸을 일으켰다. 학식은 넉넉지 못했으나 청렴하고 통솔력이 있었다. 인종(仁宗) 때 합문지후(閤門祗侯)에서 경원(慶源)의 수령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감찰어사(監察御使)를 거쳐 병부상서동지추밀원사(兵部尙書同知樞密院使)에 이르렀다. 그의 딸이 당시 최고의 권세를 떨치던 이자겸(李資謙)의 며느리가 되어 그와는 사돈이 되었으나, 이자겸(李資謙)의 권력이 왕권(王權)을 누르는 것을 보고, 인종 4년 왕명을 받들고 척준경(拓俊京)과 의논하여 이자겸(李資謙)을 잡아 유배(流配)하는 데 성공, 위사공신(衛社功臣)으로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24권
경상도(慶尙道)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김부민(金富民) 옛 이름이 아조(我朝 이씨왕조(李氏王朝)) 문종(文宗)의 휘(諱)를 범하였으므로 고쳤다. 청렴하고 신중하게 일을 잘 처리하였다. 인종조(仁宗朝)에 합문지후(閤門祗候)를 지내다가 지경원군사(知慶源郡事)가 되었더니 염치와 근면을 숭상하는 정치를 하였다. 벼슬이 여러 번 옮겨서 병부 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 딸이 이자겸(李資謙)의 아들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인척간이라고 하여 이자겸에게 아부하지 아니하고 드디어 척준경(拓俊京)과 더불어 꾀하여 자겸을 잡았다. 끝까지 자기의 공(功)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뒤에 검교사도 지문하성사(檢校司徒知門下省事)가 되었다.
참고:朝鮮 文宗의 諱는 향(珦)이다
위의 세 기록을 종합해보면 金珦과 金富民은 동일이며 金寧人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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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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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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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김향(金珦)은 고려 인종때의 사람으로 본관은 김령김씨. 자는 부민(富民)이다. 조선시대에 와서 향(珦)은 조선조 문중의 휘이므로 이를 피해 자(字)인 부민(富民)을 이름으로 썼다. 피휘에 대한 기록은 <신종동국여지승람>의 경상도 안동대도호부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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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대부님 덕에 김향, 김부민이 동일인이며 김녕김씨란 것이 완전히 정리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