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공(휘 恂) 묘소를 찾아서_03. 덕수현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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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7-03-26 18:04 조회1,743회 댓글2건본문
문영공(휘 恂) 묘소를 찾아서_03. 덕수현의 변천
고려 황도(皇都) 개경(開京)은 충렬공을 비롯한 선조들의 피땀으로 우리 문중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경은 사료 부족과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해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 홈에 축적된 자료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경과 경기(京畿)의 방리(坊里) 변천은 이 글의 논지(論旨)를 벗어나므로 문영공의 장지(葬地)가 있는 덕수현(德水縣)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 국한한다.
덕수현은 본래 고구려 덕물현(德勿縣 : 一云 仁勿縣)으로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덕수현’이라 고쳤다. 고려조에서도 계속 덕수현으로 불리다가 조선 세종 24년(1442년) 해풍군(海豊郡)과 합하여 풍덕군(豊德郡)이 되었다.
풍덕군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개성군(開城郡)에 병합되었다가 1930년 개성군 송도면이 개성부(開城府)로 승격될 때 나머지 지역이 개풍군(開豊郡)이 되었다. 뒤이어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개풍군과 장단군의 3·8선 이북 지역이 장풍군(長豊郡)으로 개편되고, 1949년 개성부가 개성시로 바뀐 뒤 1952년 개풍군과 장풍군 일부지역이 통합돼 판문군(板門郡)이 생겨났다. 판문군은 1954년 황해북도로 편입됐다가 1955년 개성직할시 산하로 복귀하였다.
이 때문에 문영공 장지는 ‘덕수현 → 풍덕군 → 개성군 → 개풍군 → 판문군’의 행정구역 변화를 추적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구역 변천에 관한 자료와 주석은 너무 지루해 생략합니다.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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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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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덕수현의 명칭 변천과정을 명료하게 정리해주심에 쉽게 이해가 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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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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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홈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