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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기사-조선일보 이덕일舍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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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4-12 10:25 조회1,5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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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조선일보 2007. 4. 2.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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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사랑] 조선강국(造船强國)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입력 : 2007.04.01 23:08 / 수정 : 2007.04.0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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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나라는 고려에 일본을 공격할 전함을 만들게 했다. “고려사” 김방경(金方慶) 열전은 ‘일본 정벌을 위한 전선을 건조할 때 중국 남방식대로 만들면 공비(工費)와 제작 기간이 더 들기 때문에 온 나라 사람들이 걱정하자 김방경이 고려 방식으로 서둘러 제조하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 방식의 전선 제작이 공비도 싸고 시간도 적게 걸렸다는 이야기다. “고려사”는 914년 “태조가 전함 100여 척을 더 건조했는데 그중 배 10여 척은 각각 사방이 16보(步:36.6m)이며 그 위에 다락을 세웠고 말을 달릴 만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태종 13년(1413) 처음 등장하는 귀선(龜船·거북선)이나 명종 10년(1555) 등장한 판옥선(板屋船)은 동아시아 최강이었다. 판옥선은 그 이전의 맹선(猛船)과는 다르게 하체와 상장의 2층 구조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이 가장 꺼렸던 이순신의 거북선은 판옥선을 개량한 것이었다. “판옥선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에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은(“선조수정실록” 25년 5월 1일)” 것이 이순신의 거북선이었다. 게다가 거북선은 “나는 것처럼 빨랐다”고 기록되고 있다. 얇은 삼(杉)나무로 만든 일본 전함은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의 상대가 아니었다. 조선 수군이 ‘부딪쳐 깨뜨리는’ 당파(撞破)전법을 애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임란 때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이 이끌고 온 명나라 전함에 대해 “선조실록” 32년 2월 2일자는 “중국 배는 선체가 작은데다 뒤쪽에 있으므로 그저 성세(聲勢:명성과 위세)만 보였을 뿐”이라고 전한다. 다만 진린과 등자룡(鄧子龍) 두 장수가 조선의 판옥선을 빌려타고 싸우는 시늉을 했던 것이다.

    한국의 조선수주량 세계 1위는 우리 장인들의 피 속에 선조들의 뛰어난 조선기술이 전수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이 맹추격 중이라는데, 이순신의 거북선 같은 창의력을 발휘해 선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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