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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근의 효성-사이버 충효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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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4-19 11:31 조회1,5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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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근 효성 기록 자료>

출전 : <사이버 충효 체험관>  http://www.chunghyo.net/

    이름 : 김가근(金可近)     묘소 지역 : 서산시.  

    출생·사망 : 1688~1740 

    구분 :효자 

    시대 : 조선(충청도) 

    내용 :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충부 부총관 행정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김가근. 영조 50년 갑오에 명정되었다. 김가근의 조부는 제학공의 15세손으로 본관은 안동이오 휘는 득신이고 호는 백곡이다.

 1604년(선조37)생으로 38세에 진사가 되고 5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등과해서 가선대부에 올라 안풍군에 봉해졌다. 그 손자가 바로 김가근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를 모시었는데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계실 때 곁에서 병간을 하던 중 갑자기 수 십 명의 화적이 들이 닥쳐와서 할아버지께 공갈 협박하였다. 이에 노복들은 도망하고 나이 어린 손자인 김가근만이 묵판으로 할아버지의 위급을 가려 드리면서 병환에 계신 할아버지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부르짖으며

  "아저씨들도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시오. 이럴 수가 있소"

하니까 화적들은

  "이놈 보게, 잘못하면 너도 죽는다."

하였다. 그는 또

  "우리 할아버지를 당신들이 구해 드릴 수 없소?. 할아버지께서 무슨 잘못이 있으십니까? 당신들에게 해를 끼치신 일이 있나요? 아무런 죄가 없지 않소?"

 의연한 태도로 무서움도 생사도 가리지 않고 서슴지 않으며

  "할아버지의 노환과 장병에 돈이 어디 남아 있겠소!"

하니 어린 가근의 말에 화적들도 인간인지라 생각이 있었는지

  "아 그놈 보게 그럴 듯한데. 그러나 너 이 놈 돈을 내어놓지 않으면 안돼"

하고 재다짐하자

  "여보시오, 내가 다 말했잖소, 창고에 벼밖에 없으니 가지고 가시오. 그것이 전부 다요"

하자 화적들은 저희들끼리 중얼거리며 나가 버렸다. 그래서 조부께서 병환 위급에서 모면했다 한다.


 그 후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유림들은 도의 관찰사에게 건의하고, 관찰사도 감탄하여 조정에 상주했다. 영조대왕이 ‘이제까지 효자 효열부의 정표 사실은 많았어도 효손정표란 처음 있는 일이다’ 하고 서류를 책상머리에 밀어놓고 의아해하며 잠시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바람이 불어 서류는 어전에 갖다 놓여졌다. 그러자 전하께서는

  "아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이는 하늘에서 낸 효손이기에 하느님께서도 재가를 촉구하는 뜻이다.!"

하시며 효손명정을 명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효손정문이란 희귀한 일이다.

 

 *가계 : 제학공 6대손, 영상공(錫)-구암공(忠甲)-부평공(時晦)-송화공(緯)-현감공(得宗)-첨추공(天挺. 생부 得臣)-二子 참판공(可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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