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페이지 정보
김태영 작성일07-04-21 09:34 조회1,485회 댓글1건본문
퇴계의 풍류에는 매화와 관기 두향을 빼고는 이야기 할수 없다. ‘낮 퇴계 밤 퇴계’란 말로 요약되고 완성된다. 이 말 속엔 동양 최고 학자의 풍모와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의 냄새가 동시에 묻어 있는 멋진 찬사다. 만약 “낮 퇴계와 밤 퇴계가 같다”고 했을 땐 늘푼수 없는 선비의 좁쌀 같은 이미지만 비쳐질 뿐 아무런 매력이나 멋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여인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낮엔 요조숙녀 밤엔 요부’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다면 ‘낮 퇴계 밤 퇴계’는 이하 동문이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 물고 있는 관계여서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비슷하다. 머리 속에 지식께나 들어 있는 식자층은 “그거야 정신이 우위에 있지”라고 흔히 말한다. 굳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육체를 하대하고 정신만 높이 사면 거푸집 없이 짓는 건물과 같고 육체를 떠난 정신은 집 없는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시간의 신이 인간에게 백년이란 시간을 주었다. 죽고 나면 정신은 영혼의 신이, 육체는 흙의 신이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백 년 동안은 슬픔과 불안의 신이 지배하는 것으로 미리 정해 두었다. 참으로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이야기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이 덫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정신은 하나님의 영역에 많이 편입되어 있고 육체는 인간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가 죽음을 맞는 순간 서로 흡수되고 통합되어 새로운 시작을 향해 행진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신과 육체를 굳이 분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남녀 간에 몸을 배제한 정신만의 만남은 한 때 반짝하는 정전기의 발작이거나 그리움의 유혹일 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육체가 경험한 아름다운 기억을 정신이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은 것이다. 그 기억을 추억할 줄 아는 육체는 능히 정신과 융합하여 불멸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거나 더러는 역사 속의 이야기로 남아 오랜 세월 동안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퇴계는 자신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은 참다운 선비였다. 그는 평생을 근면과 검소로 버텼고 간소한 묘비명만 자식들에게 허락했을 뿐 예를 갖춘 장례까지 마다할 정도였다. 그런 근엄하고 학덕이 깊은 학자가 9개월간의 단양 군수 시절에 두향(杜香)이란 어린 기생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생애가 끝나는 순간까지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녔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일인가.
퇴계 나이 48세 때 18세인 관기 두향을 만났다. 두향은 총명했고 학문과 예술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지 두 해째인데다 매화를 가꾸는 솜씨가 비범한 그녀였으니 매화를 좋아하는 퇴계가 빠져들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는 주자학의 거두 주세붕이 ‘대학’을 줄줄 외며 그 이치를 꿰고 있던 탁문아라는 기생을 항시 옆에 두고 학문과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한다.
퇴계는 짧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전 날 밤 두향의 치마폭에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다”(死別己呑聲 生別常惻測)는 시 한 수를 적어 준다. 그리고 단양을 떠날 때 두향이 정표로 퇴계에게 선물한 분매 한 그루만 가마에 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퇴계는 숨을 거둘 때까지 20년 동안 이 매화를 사랑하는 연인 대하듯 애지중지한다.
두향의 분매는 흰눈과 얼음 같은 살결과 옥과 같은 뼈대를 지닌 보기 드문 빙기옥골(氷肌玉骨)이었다. 그 매화는 가지치기를 잘하여 등걸은 드러나 있고 줄기는 알맞게 구부러져 가지는 성깃하고 꽃은 드문드문 붙어 있는 최고의 단엽 백매였다.
이 매화를 잠시 서울에 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퇴계는 못내 그리워 손자 이안도를 시켜 자신의 거처로 가져오게 한 적도 있었다. 두향의 혼이나 다름없는 아취고절(雅趣高節)의 분매를 보자 퇴계는 “원컨대 님이시여 우리 서로 사랑할 때 청진한 옥설 그대로 고이 간직해 주오”(願公相對相思處 玉雪淸眞共善藏)라는 글을 짓는다. 이는 사랑할 때 나눈 운우지정을 그리워하며 두향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가 아니었을까?
퇴계가 열반에 드는 날 아침 아랫사람에게 “분매에 물을 주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저녁 무렵 “와석을 정돈하라”고 이르고 벽에 기대어 두향의 사랑이 가지마다에 서려 있는 매화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사랑하는 사람아!”
한편 두향은 퇴계가 죽자 그리움에 지친 22년의 세월을 마감하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퇴계가 시를 써준 치마와 수절을 맹세하고 자른 옷고름은 두향의 시신과 함께 충주댐 옥순봉 기슭에 묻혀 있다.
두향을 생각하며 고정희 시인이 쓴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는 시 한 편 읽는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저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 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 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나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네이버블로그에서 옮김-
댓글목록
김상석님의 댓글
![]() |
김상석 |
---|---|
작성일 |
최인호의 <유림>에 소개된 바와 같이 지금도 내고향 단양엘 가면 청풍호반 위 남한강의 도도한 물결을 굽어보며 그녀의 묘소가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마침 그 앞동네가 두항리(里)인데 지명의 유래에 대한 궁금증에 앞서 조선조 유림의 숲에서 속삭였던 절절한 러브스토리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퇴계선생이 단양군수시절 당시 청풍현에서 단양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던 옥순봉 지역을 단양에 편입시켜 달라는 소를 낸 사연과 함께 무수한 전설을 기억하며 충주로 가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봄을 만끽할 수 있다면-----,네가 그리워서 울겠노라!
육체적인 사랑의 무게와 질감을 생각하게 된 멋진 글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