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근 정려-서산시청 제공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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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4-21 10:56 조회1,602회 댓글0건본문
어제(2007. 4. 20). 충남 서산시청 문화관광과의 이강열님으로부터 제가 요청한 김가근 선조님 정려에 대한 자료를 사진은 이메일로, 해설자료는 팩스로 전해 왔습니다. 이에 게재합니다. 사진은 흑백밖에 없다고 합니다. 책자 속의 자료를 직접 스캔하여 보내주신 것입니다. 서산을 지나시는 분들의 사진 제공을 고대합니다.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이강열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려 소개>
1. 자료 제공 : 충남 서산시청 문화관광부 이강열님
2. 자료명 : 1)정려 사진(1998년 촬영), 2) <김가근 정려 문화재 조사 자료>
3. 내용
1)사진 자료
2) <김가근 정려 문화재 조사 자료>
출전 : <서산시지>(서산시 간. 1998.)
(1)유적명 : 서산 김가근 영정
(2)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정문거리)
(3)시대 : 조선(1774년) 명정. 1964년 개건
(4)유적 개요 : 운산면 소재지에서 서산 방향으로 약 1km정도 가면 갈산에 이르는데, 갈산리 1구 마을 입구 소로에서 서편으로 난 밭길을 따라 80m 정도 들어가면 마을의 정문거리라 부르는 곳에 정려가 위치한다.
정려는 방형의 시멘트 기단 위에 세워진 정 측면 1칸의 건물이다. 방주형 초석 위에 8각 돌기둥을 세우고 둥근 기둥을 올렸으며 전면과 양 측면은 홍살을 두르고, 후면은 중방 밑까지 벽돌로 채우고 중방 위는 시멘트로 처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에 이익공 양식의 건물이다.
정려 나무에는 석재로 만든 명정현판(가로 114cm, 세로 37cm)이 있는데 ‘孝孫 贈嘉善大夫吏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 副總管 行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 金可近之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현판은 1964년에 7대손 金在憲이 정려각 건립과 함께 改建한 것으로, 정려 건립시 함께 만들어진 원현판의 유무는 확인되지 않는다.
김가근(1658-1740)은 본관이 안동으로, 1658년 충북 괴산 능촌리에서 태어났다. 자라면서 얼굴이 수려하고 남보다 총명하여 조부인 金得宗은 장차 이 아이는 가문을 빛낼 것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김가근이 자라 조부가 병이 들어 간병할 때 화적이 나타났는데, 김가근은 자기 몸으로 조부를 막고 적에 대항하여 결국 칼에 찔리고 조부는 화를 면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지극한 효성이라고 칭찬했다.
해미 여미리의 전주이씨인 李震白의 동생 李東白의 딸과 혼인하여 이 지역과 인연을 맺었고, 말년에 처가에 와서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인덕을 베풀다가 83세인 1740년(영조16)에 죽었다. 효손으로서의 행적은 원래 거주지인 충북 괴산군에서 있었으나, 해미 사림들의 천거로 죽은 뒤 34년 만인 1774년(영조 50)에 가선대부 증직과 효자 명정을 받았다.
한편, 정려로부터 북서쪽으로 100m 떨어진 구릉 중반부 동남향 사면 야산에 김가근의 묘소와 1833년에 세운 구묘비, 신묘비가 1기씩 서 있다.
<서산시, 1998. 『서산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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