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에게 보내는 서간 - 포은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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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6-09 10:21 조회1,531회 댓글1건본문
둔촌에게 답하는 서간 - 포은 정몽주
七월 스므 하룻날 문득 가장(佳章)을 받들었습니다. 두 번 세 번 읽는 동안 물외(物外)에 초연(超然)한 사람은 그 하는 말씀도 쇄연(灑然)하여 속인들의 미칠 바가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여강(驪江)은 나의 좋아한 바요 선생 역시 아시는 바이지만 선생께서는 나보다 먼저 착편(着鞭)하실줄은 몰랐습니다. 남쪽을 바라보니 부지중에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더구나 세상에는 새로운 일들이 해도 다르고 달도 달라지니 오직 하겠습니까. 요즈음 약재(若齋)는 여묘(廬墓)를 산다고 들었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관청 일도 틈이 나기에 도은(陶隱)과 함께 필마로 가서 조문할까 합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천녕(川寧)에 들려 하룻밤 묵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입니다. 해마다 보내주신 햅쌀은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유월달부터 이질(痢疾)에 걸려 달포나 되어 갑니다. 요즈음은 조금 낫기로 다행히도 이렇게 아뢰오며 나머지는 도(途: 둔촌 장자의 소시 이름인데 포은 문하에서 수업하였다)가 돌아 갈때 전해드리겠습니다. 가을날씨 서늘한데 부디 조심하십시오. 이만 줄이오며 정몽주(鄭夢周)는 돈수(頓首)합니다.
-둔촌선생유고에서-
<주>
위 내용으로 보면 문온공께서 어머니 군부인 여흥민씨가 돌아가셨을때 여묘살이를 하신 것 같습니다.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등이 틈을내어 조문을 하겠다는 내용이며 이 때에 천녕에서 만날 것을 둔촌 이집에게 알리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목은 이색이 찬한 여흥군부인 민씨묘지명을 살펴보면 1379년(우왕5) 5월에 돌아가셔서 12일후인 윤5월에 조모 김씨묘역에 장사지냈다. 따라서 문온공께서 여주에서 한거하던 42세가 되는 해에 모친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동김씨 홈 주요인물난 김구용 년보에 보면 “모향(母鄕)인 여흥(驪興)으로 옮겨 7년간 한거하였는데 이때 여강어우(驪江魚友)라 자호하고 강호에 노닐면서 거처하는 곳을 육우당(六友堂)이라 이름하고 시와 술로 날을 보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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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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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저씨,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