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감사공(휘 素)에게 동명 김세렴이 주는 시(동명집)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7-06-12 10:58 조회1,837회 댓글0건

본문

감사공(휘 素)에게 동명 김세렴이 주는 시 두 수   

1.  東溟先生集卷之二. 一善金世濂道源著.   詩 . 五言 排律

   秋思.  

落日上高樓。西風起庭樹。蟋蟀鳴何悲。感此時序暮。 


春華似昨日。忽覺變金素。摵摵林木疏。玄蟬號白露。 


歸心日以催。此地非吾土。故鄕隔蟾水。江波東北騖。 


明朝理扁舟。浩然歸衡宇。



2.  東溟先生集卷之四.  五言律詩.   

      送金永興知白素   

傾蓋相歡甚。何須在白頭。酒筵當畏日。離思似悲秋。


地走關山道。江通碧海流。雙魚知有信。五馬且淹留。


*김세렴(金世濂)

1593(선조 26)∼1646(인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 자는 도원(道源), 호는 동명(東溟).

아버지는 통천군수 극건(克鍵)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로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봉(篈)의 딸이다.

22세에 생원·진사시에 합격,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서 장원급제하여 예조좌랑이 되었으며, 시강원사서를 겸임하였다. 이어 홍문관수찬·지제교를 거쳐, 1617년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해 폐모론을 주장하는 자들을 탄핵하다가 곽산으로 유배, 1년 만에 강릉으로 이배(移配)되었다.

1년 뒤 귀양에서 풀려났지만 벼슬은 하지 못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기용되어, 홍문관수찬·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를 거쳐 이듬해 수의어사(繡衣御史)로 충청도를 살폈으며, 사헌부지평·교리·부응교를 역임하였다. 집의로 있을 때 공신 이귀(李貴)가 이조판서로 자천(自薦)하는 방자함을 왕에게 아뢰다가, 왕의 뜻에 거슬려 1634년 현풍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636년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될 때 부사로 선발되어 일본을 다녀와 사간이 된 다음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했으며, 1638년 동부승지를 거쳐 병조참지와 병조·형조·이조참의,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641년 늙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외직을 구하여 안변도호부사·황해도관찰사를 지내면서, 《근사》·《소학》·《성리자의 性理字義》·《독서록 讀書錄》 등을 간행하고 향약을 실시하는 등, 도민의 교화에 힘썼다.

1644년 평안도관찰사로 옮겼다가 대사헌으로 조정에 들어가 홍문관제학을 겸임하였고, 바로 도승지를 거쳐 호조판서로 군현방납(郡縣防納)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만년에는 경서연구에 전력하였고, 문장이 아름다웠으며, 특히 시문에 능하였다. 그를 가리켜 김류(金#유15)는 ‘진학사(眞學士)’로, 정경세(鄭經世)는 ‘당대 제일의 인물’이라고 칭송하였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저서로는 《동명집 東溟集》·《해사록 海槎錄》 등이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