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휘 素)에게 태계 하진이 주는 시(태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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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6-11 16:40 조회1,437회 댓글0건본문
감사공(휘 素)에게 태계 하진이 주는 시(칠언율시)
출전 : 민족문화추진회. <台溪集>(태계집)
台溪先生文集卷之三. 詩
病中謝金明府知白素 來訪 戊子
南嶺西湖久別離。豈知今日荷恩慈。徐稚未下陳蕃榻。山簡先尋習缺池。
草木增榮新德化。山川動色舊風儀。從容一語蘇千病。可想他年作上醫。
하진(河溍) 1597(선조 30)∼1658(효종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진백(晋伯), 호는 태계(台溪).
대사간 결(潔)의 7세손으로, 공효(公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기(尹起)의 딸이다. 이각(李殼)의 문인이다. 어렸을 때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에 이르렀다가 아버지의 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상을 마친 뒤 병조낭관·헌납·지평을 역임하다가 신병과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사임하였다.
1649년(효종 즉위년) 다시 지평으로 부름을 받고 나아가 사은한 다음 김자점(金自點)의 전횡을 탄핵하고 즉시 사임, 귀향하였다.
그뒤 여러 번 장령·사간·집의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관후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하였다.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고, 저서로 《태계문집》 4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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