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우리가문 07 (金大涉과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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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5-28 03:54 조회7,309회 댓글0건본문
임진왜란과 우리가문 07 (金大涉김대섭과 허균처 안동김씨)
문온공파 : 김구용-김명리-김맹헌-김자양-김예생-김윤종-김진기-★김대섭-김확-김정지-김환
<디지털한국학>
▣ 김대섭(金大涉)
시대 조선
생몰년 1549-1594(명종4-선조27)
본관 안동(安東)
자 사정(士亭)
호
시호
활동분야 문신
다른 이름
1549(명종 4)∼1594(선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사정(士亭). 할아버지는 경상도병마절도사 윤종(胤宗)이다.
1573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질병으로 문과 응시를 단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 행재소로 달려가 왕을 호종하였다.
●이듬해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며, 이어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가 되었다.
이때 명나라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 송응창(宋應昌)이 경략방해비왜군무(經略防海備倭軍務)가 되어 입국함에 이의 접대임무를 맡은 윤근수(尹根壽)밑에서 외교관계의 잡다한 일들을 빈틈없이 수행하다가 격무로 병사하였다.
참고문헌 象村集. 〈文守弘〉
<사마방목>
▣ 김대섭(金大涉) / 宣祖 06 式年 生員
【시험년도】 선조(宣祖) 06 (1573) 식년(式年) 생원(生員)
【합격등위】 3등 0076
【본인성명】 김대섭(金大涉)
【본인 자】 사형(士亨)
【본인생년】 기유(己酉) 1549
【본인본관】 안동(安東) 김(金)
【본인거주】 경(京)
【본인구존】 영감하(永感下)
【본인전력】 유학(幼學)
【부친성명】 김진기(金震紀)
【부친품계】 승훈랑(承訓郞)
【부친관직】 활인서(活人署) /별제(別提)
안동김씨 게시판
작성자 :김영환() 작성일 : 2001/09/08 16:45 (from:211.219.10.55) 조회 : 62
▣ 9월의 문화인물 허균과 안동김씨
허난설헌은 안동김씨 서운관정공 후손인 김성립의 부인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허균의 부인 또한 우리 안동김문의 따님이시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아 여기에 소개한다.
허균의 대한 자료는 생략하고,
그의 조강지처인 김씨에 대하여 살펴보면.... 문온공(척약재 김구용)의 8세종손은 의금부도사를 지내신 김 대섭이다.
김 대섭은 1남 2녀를 두었으니,
첫딸은 실학자로 유명한 지봉 이 수광이고
그의 아들이 영의정을 지낸 이 성구,대사성을 지낸 이 민구이다.
둘째딸이 바로 교산 허균의 첫 번째 부인이다.
그 다음의 아들이 철원부사, 상의원정을 지낸 김 확이다..
◈ 허균 (이 이화 지음, 한길사 발행) 에서 인용
....전략......
허균은 열일곱 살 때에 혼인하여 얻은 세 살 아래의 아내 김씨 에게도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때서야 이성에 눈뜨기 시작 했고 아내에게 정을 지니게 되었다.
김씨는 도사 김 대섭의 둘째딸로서 현명하고 정숙한 부인이었다..
김 대섭의 맏딸은 실학자로 유명한 지봉 이수광에게 시집갔고, 김씨는 둘째딸로서
허균에게 시집와 홀시어머니를 극진히 받들었고 종들을 거느릴 때에는 엄하고도 자애롭게 대했다.
허균이 놀기를 좋아할 때마다 군자는 몸가짐을 잘 가져야 한다고 나무랄 지경으로 현명한 부인이었다. 또 그에게 늘 부지런히 공부하기를 권하면서, 가난한 집안 살림과 늙으신 어머님을 생각하여 재주만 믿고 잠깐이라도 놀아서는 안 된다고 격려하기도 하였다.
허균은 이때부터 친구를 넓게 사귀고 술집에 드나들며 놀기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자유롭게 풍류를 즐기는 활달한 선비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같다.
●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허균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강원도 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허균으로서는 육체적 고통도 처음으로 겪는 셈이었다. 이때에 그의 식구들은 하루에 한끼도 먹지 못했다고 하며,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잠을 자며 하루에 칠 팔십리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내 김씨는 피난길에 단천 에서 첫아들을 낳았다. 김씨는 황급한 피난길에서 굶주리고 산후조리를 못해 아들을 낳은 지 사흘만에 임명역 근처의 산성원 에서 세상을 떠났다.
허균은 아내의 체온이 채식기도 전에 타향에서 소를 팔아 관을 짜고 옷을 찢어 염을 하여 장사지내고 강릉으로 향했다.
혼인한지 8년 만에 사별이었고 김씨는 첫딸을 낳은 후 피난길에서 아들을 낳다가 불행을 당했다. 그런데 갓난 아들도 피난길에 잃게 되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허균과 김씨 사이에서 낳은 딸은 진사 이 사성에게 시집갔고, 여기에서 태어난 외손자 이필진이 오직 그의 하나뿐인 유문집 [성소부부고]를 보존했다.
허균은 뒤에 형조참의가 되어 죽은 김씨가 숙부인으로 봉함을 받자, 애절한 행장을 지어 김씨를 추모했다. 이하 생략.
◈ 망처숙부인김씨행장(9월의 문화 인물 책자에서 인용) 亡妻淑夫人金氏行狀
부인은 융경 신미년(1571)년에 나서 열 다섯에 우리 집으로 시집왔다. 언행은 삼가 공손하면서도 꾸밈이 없었다. 길쌈을 하는 것도 부지런하여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고, 말을 하는 것도 아예 입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았다.
나의 홀어머니를 섬기는 데도 매우 공손하여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찾아뵈었다. (중략)
● 임진왜란을 만났을 때 적을 피하여 다녔는데 마침 애를 배어서 지치고도 급하게 되었다.
단천에 이르러서 7월 7일에 아들을 낳았다. 겨우 이틀이 지나자, 적들이 갑자기 이르렀다. ... 아내는 10일 저녁에 목숨이 끊어졌다. 소를 팔아서 관을 사고 옷을 찢어서 염을 했다.
살덩이가 아직도 따뜻해서 차마 땅에 묻을 수 없었다. 곧 적이 성을 공격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진창의 도사가 급히 명령을 내려서 뒷산등성이에 임시로 묻었다.
그대가 세상에서 누린 나이는 스물 둘이요, 나와 함께 산 것은 모두 팔년 이었다. 아! 아! 슬퍼라 그대가 낳은 아들도 젖이 없어서 일찍 죽었다. 처음에 딸 하나를 낳았는데 자라서 진사 이사성에게 시집을 갔다. (중략)
을미년(1595년)3월에 어머님을 따라 원주 서면 갈대 숲에다 마지막으로 관을 묻었다. 이 언덕을 선영 왼쪽에 있었는데 동북쪽을 등지고 서남쪽을 바라보는 곳이다.
이에 삼가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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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부인 안동김씨를 잃고 그후 둘째부인을 얻었는데, 선산김씨 김효원의 딸인데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연속극 [천둥소리]에서 나오는 부인은 바로 선산김씨이며첫부인 안동김씨의 사위 이사성은 허균과 관련되어 고문 끝에 귀양을 갔다.
안동김씨 게시판
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1/11/09 22:07 (from:210.104.148.5) 조회 : 23
▣ 金水亭 (경기포천) ② (신흠의 상촌선생집 기록)
서울대학교 규정각에 소장되어 있는 상촌 신흠 선생이 쓴 상촌선생집 (목판본, 1636)을 1994년에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펴낸 국역 상촌집 1권에 금수정을 보수하고 개축하신 (문온공파) 김확의 어머니이고 김대섭의 배위이신 의인심씨 誌銘(지명)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상촌선생집 제24권
의금부도사 김공 의인심씨 합장지명 (義禁府都事 金公 宜人沈氏 合葬誌銘) 병서
--- 생 략 ---
● 그런데 임진년에 병란이 일어나자 가족을 데리고 嶺北(영북)으로 피난갔다가 이어 서쪽으로 行在所(행재소, *임금이 멀리 거둥할 때 임시로 머무르는 별궁)에 갔다.
계사년에는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가 조지서별좌에 옮겨졌다. 이때에 東征(동정) 나온 중국 將士(장사)들이 모두 기세를 부렸으나 경략 송응창은 엄중히 규율을 지키는 제부 중에 으뜸이었다.
해평군 윤근수가 빈접사의 임무를 맡고 있으면서 특별히 공(=김대섭)을 추천하여 그(=윤근수)의 관속으로 삼았는데, 공이 모든 일을 힘껏 조치하여 복잡한 상황을 여유있게 처리하였으므로 해평공이 공의 재능을 자주 칭찬하였다.
스런데 마침내 과로로 인하여 병이 나서 갑오년 여름에 서울 객사에서 별세하였는데 나이가 겨우 46세였다.
난리로 인하여 임시로 수원에 장사했다가 8년이 지난 신축년에 영평현 남쪽 선산에서 2리 떨어진 종현산 미좌 축향의 언덕에 이장하였으니 遺志(유지)에 따른 것이다.
--- 생 략 ---
▣ 김태서 -
▣ 김영환 -
▣ 김윤만 - 안동김씨 따님들의 큰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 김항용 -
▣ 김항용 -
▣ 김재익 -
▣ 김은회 -
▣ 김재원 -
▣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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