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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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7-03 10:39 조회1,511회 댓글0건본문
선릉 [宣陵]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三成洞)에 있는 조선 성종(成宗:재위 1469∼1494)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의 능.
지정번호 사적 제199호
지정연도 1970년 5월 26일
소재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131
시대 조선시대
분류 능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역내에 있는 조선 중종(中宗:재위 1506∼1544)의 정릉(靖陵)과 함께 동일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성종은 추존된 덕종(德宗)과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아들로 1457년(세조 3)에 태어나 1469년에 왕위에 올랐는데 1476년(성종 7)까지 세조비(世祖妃) 정희대비(貞熹大妃)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으며 1494년(성종 25) 창덕궁(昌德宮) 대조전(大造殿)에서 죽었다. 정현왕후는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로 1462년(세조 8)에 태어났으며 1479년(성종 10) 연산군(燕山君)의 생모인 윤씨가 폐출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되었고 1530년(중종 25) 경복궁 동궁에서 죽었다.
왕릉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새겨진 병풍석(屛風石) 12면을 세우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그 밖으로 양석(羊石) 2쌍, 호석(虎石) 2쌍과 무덤 앞에 상석(床石)을 배치하고, 양쪽에 망주석(望柱石) 1쌍을 세우고 3면의 곡장(曲墻)을 설치하였다. 한 단 아래에는 문인석(文人石) 1쌍과 마석(馬石) 1쌍, 가운데 명등석(明燈石)이 있고, 그 아래에는 무인석(武人石) 1쌍, 마석 1쌍이 세워져 있다. 왼쪽 언덕의 왕비 능에는 병풍석 없이 난간만 돌렸고, 대석주(大石柱)의 주두(柱頭)는 초기 난간의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밖에 제반 능상설(陵象設)은 왕릉과 같다. 두 무덤 언덕 아래에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이 있고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왕과 왕비의 능이 동원이강식(同原異岡式)으로 배치되었다. 세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석실(石室)을 쓰지 않았을 뿐, 제반 능상설은 국조오례의식(國朝五禮儀式)에 준하였다. 장명등(長明燈) 양식은 태종의 헌릉(獻陵)을 본뜬 것 같으며, 석인(石人)의 얼굴은 극히 사실적이나 몸집이 기둥같다.
<선릉 홍살문>
<선릉 참도>
<선릉 수복방>
<선릉 정자각>
<선릉 정자각>
<선릉 양마석>
<선릉 명등석(장명등)>
<선릉 문인석>
<선릉 무인석>
<능과 주변 모습>
<선릉 신도비>
<정현왕후 릉>
<문인석>
<정현왕후 릉 무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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