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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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7-14 12:18 조회1,859회 댓글0건본문
지난 7월 8일, 안사연 정기산행시 메모한 내용입니다. 자료 공유를 위해 이곳에 올립니다. 혹시 잘못된 것이나 추가 내용이 있으면 보충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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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공부>
1. 일시 : 2007. 7. 8.
2. 장소 : 서울시 내곡동 헌인릉, 삼성동 선정릉
3. 학습자 : 안사연 약 13명 일동
4. 해설사 : 전문 해설사, 왕릉 지킴이 <고문준님>(60여세)
5. 내용 종합
가. 헌릉(獻陵, 태종 릉)
1)조선 3대 태종(太宗)과 그의 비(妃)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의 능이다.
2)조선의 왕릉은 총 44기가 있는데 현재 2기는 개성에 있다. 42기는 남한에 있음.
*개성에 있는 것:1)태조(太祖)의 1비 신의왕후한씨(神懿王后韓氏) 제릉(齊陵)
2)정종(定宗)과 비(妃) 정안왕후(定安王后 金氏)
3)조선의 왕릉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 중이다.
4)왕의 죽음 과정
가)왕은 죽기 직전에 다음 왕을 지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고명(顧命)이라 한다.
*고명(顧命) : 임금이 임종 때에 세자(世子) 및 신임하는 신하에게 뒷일을 부탁하여 남기는 말.
나)머리를 동쪽으로 누이고 촉광례(코와 입 사이 인중에 솜을 대어 호흡 여부를 판단)를 함, 죽음이 확인 되면,
다)곤룡포를 들고 내관이 지붕에 올라 '상위 복'이라고 3번 불러 떠나는 혼을 옷에 담아 죽은 왕의 몸에 덮음.
*주. 상위복 [上位復]
조선의 국가의례인 오례(五禮)에서 흉례(凶禮)의 절차 가운데 하나인 복(復)을 말함. 상위(上位)란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며, 복은 돌아오라, 회복하라는 뜻. 내시(內侍)가 평상시에 입던 임금의 웃옷을 왼쪽으로 메고, 앞 동쪽 지붕 처마로 올라가서 지붕 한가운데 마룻대 위를 밟고,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 허리를 잡고서 북향하여 세 번 상위복이라 불렀음. 동쪽은 생명의 방향을 뜻하며, 북쪽은 죽음의 방향을 뜻하므로 동쪽으로 올라가 북쪽을 향해 외친 것임. 복은 죽음의 길로 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며, 세 번 부르는 것은 셋을 성스러운 수로 여겼기 때문임. 내상(內喪) 즉 대비나 왕비의 경우라면 중궁복(中宮復)이라고 하였음. 이를 마치면 옷을 앞으로 던지는데 내시가 함으로 이를 받아 들어와서 대행왕(大行王)의 위에 덮고, 덮은 사람은 뒷 서쪽 지붕 처마로 내려갔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실려 있음. 민간의 초혼(招魂) 의식과 같음.
*돌아가시기 직전의 머리 방향 : 동쪽. *임종 후 : 남쪽. *하관땐 : 북쪽으로
라)옷과 천으로 가린 상태에서 목욕을 시킴. 머리는 기장 뜸물로, 몸은 향 달인 물로 씻음
마)9벌의 옷을 입힘-곤룡포, 근무복, 대례복(면복, 면류관) 순. 비단 1필로 혼백을 만듦. 마지막으로 곤룡포를 입히고 나머지는 보공(관 속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넣음.
바)맨 마지막엔 도끼가 그려진 덮개(도끼가 거꾸로 그려짐) 를 덮음. 관의를 덮어 재궁에 모심
사)궁에 빈전을 만들어 5개월을 지냄. 이때 조문을 받으며 왕릉을 조성함. 대여가 나갈 때는 맨 앞에 4명의 귀신탈을 쓴 사람들이 감. 이들은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함. 능에 당도해서 이들은 능의 사방을 창으로 찔러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을 함.
아)‘혼백-신주목-대여’의 순으로 행렬. 왕비의 대여는 장막을 침.
자)능에서는 천(유막)으로 가리고 장사 지냄
차)능에 도착해서는 신주를 씀. 초우를 지내고 나면 신주는 궁에서 3년을 지낸 다음 종묘로 모심
5)능에서 지내는 기일 제사를 기신제(忌神祭)라 하는데 축시 1각(밤 1시 15분)에 지냄. 그런데 요즘에는 보여주기 목적으로 낮에 지냄.
6)궁에 처음 들어갈 때 있는 다리를 금천교(禁川橋)라 하는데 이 다리는 몸의 악귀를 쫓고 사악한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의미가 있음. 종묘에도 입구에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짐.
7)능 입구의 홍살문(헌릉은 11개의 살, 인릉은 9개의 살) 앞에 있는 구멍 뚫린 돌은 외 홍살문으로 2개가 겹으로 있으면서 그 사이에 나무를 끼웠던 것임.
8)능 입구에서 왕이 말에서 내리고 가마를 타고 홍살문까지 감,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감. 홍살문에 이어있는 참도로 가기 전에 입구 우측에 있는 <배위, 판위>에서 망릉례(望陵禮)로 4배를 함. 참도는 좌측부터 신도(神道), 어도(御道), 신도(臣道-박석)로 구분되어 있음. 1900년대 초에 찍은 헌릉의 참도 사진에는 맨 우측에 박석이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짐.
9)정자각 입구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계단이 2개가 있는데 좌측은 신계(神階-혼령이 이용)이고 우측은 동계(東階)로 왕과 신하들의 계단임.
10) ‘정자각’을 짓는 이유와 정(丁)의 의미는? (미상)
11)현재 왕릉 재실은 영릉만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잘못 되어 있음. (종묘는 현 사무실이 재실임). 재실 주변엔 많은 제수 장만 건물이 있었음.
12)동구릉에 있는 건원릉(태조)과 헌릉(태종)은 고려말 제도를 따름. 세종부터는 새 능법에 따라 조성됨
*고려풍 : 3단의 장대석, 석상이 2개씩 있음. 예감(축문 태우는 곳)이 있음.
*조선풍 : 3단의 장대석 계단이 없음.
*천신제엔 축문을 태우고, 지신제엔 축문을 묻음.
13)세종때까지 신도비가 있었고 이후는 없음
14)세종의 신도비가 현 인릉(순조릉) 아래쪽에서 발견됨으로써 천장 이전의 위치가 밝혀 졌고 이 신도비는 현재 서울 세종대왕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음.
15)헌릉에는 예감, 소전대가 다 있음.
*예감(瘞坎):축문을 묻는 곳으로 구멍을 둟고 소나무 판자를 덮음
*소전대(燒錢臺):축문을 태우는 곳
*망료위 : 축문 태울 때 이를 보는 곳
*망혜위 : 축문 묻을 때 이를 보는 곳
@소전대가 후에 망료위로 변한 듯함
16)선왕이 죽은 뒤 6일 후에 신왕이 등극함. 빈전에서 영의정이 유교함(遺 敎函)을, 좌의정이 옥새(玉璽)를 줌, 인정전이나 근정전에 새 왕이 앉으면 신하들은 ‘천세’를 3번 외침. 등극장소는 빈전 주변임. 정전 안에서 등극하지 않고 처마 밑에서 함. 광해군은 선조 사망 다음날 즉위식을 함. 왕위가 불안하여 즉시 즉위한 것임. 면복(면복?)을 입고 즉위식.
*<죽은 이의 표시>
*소상(小像) : 도교 문화, *신위(神位) : 유교 문화
17)종묘 제례 : 7일. 능제 : 3일 동안 근신함. 어진을 놓고 제사하지 않음
18)종묘의 기신제 : 정전에서 지냄. 영녕전에서는 안 지냄. 여기서는 조천례(?)를 지냄
*종묘의 정전에는 정통 혈통의 임금을, 영녕전(15위)에는 비 정통 혈통의 임금을 모심. 4대를 기다렸다가 모심. 철종 이하는 그 4대를 기다리지 못했기에 정전에 모심.
19)건원릉은 힘이 있어 보이나 헌릉은 힘이 없어 보임.
20)헌릉의 홍살문은 살이 11개
21)정자각 처마 아래로 이어진 안쪽 판 안에 있는 것 - 고패(발 치는 기구).
정자각 내부 방 안에서는 절하지 않음. 밖에서 함. 정자각 안에는 신주가 없음. 대신 영좌(靈座)가 있음
22)계단을 오를 때는 우측발 먼저 모듬발로, 내려갈 때는 좌측발 먼저 모듬발로 오르내림
23)공수법 : 흉사-남우, 여좌. 3년상에는 반대(?)
24)소전대 : 헌릉에서만 축문을 태움
25)정자각 지붕 위 잡상-서유기에 나오는 동물들
26)헌릉 장대석 : 2자 7치. 현재는 많이 묻힘
27)병풍석의 12지신상. 전면 좌측의 원숭이 상 머리 위에 양 모습 무늬가 있음
*병풍석에 뒤에 있는 무늬:영탁, 요령 모습
28)헌릉 혼유석 크기 : 가로-340cm, 세로-194, 높이-47. 고석 높이-50
29)원-후궁중 아들을 나은 여인. 묘-폐주(연산군 광해군). 왕-릉
30)세조 때부터 산릉 공사의 노력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병풍석이 없어짐. 석실도 돌이 아닌 석회로 쓰게 함. 6천명의 필요했는데 이로써 3천명으로 줄어 듦.
31)석실 밖 위 아래 14.5m는 회를 쓰고, 25.5m는 숯으로 가득 채움
32)석실 높이-1.7m, 사방에는 사방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위에는 일월성시도. 사각 구석은 봉토(?)를 채워 기가 통하게 함
나. 인릉(仁陵-순조 능)
1)인릉의 홍살문 살 수 : 9개
2)인릉은 세종의 능자리였음
3)혼유석 크기 : 가로-292cm, 세로-187, 높이-48. 고석 높이-47
다. 정릉(靖陵-중종 능)
1)혼유석 크기 : 가로-314, 세로-196, 높이-50, 고석 높이-61
*세조릉의 난간석에는 12지신이 있음
2)능의 위쪽에 튀어 나온 돌 : 引石
라. 선릉(宣陵-성종 능)
1)묘비석은 일반좌대에 갓머리를 함. 오석에 전서체로 씀. 2개의 묘비
2)홍살문 살 수 : 12개
3)석마의 배 아래 부분은 돌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징임. 문관석의 얼굴은 웃는 상임. 정현왕후(성종의 계비)의 릉은 따로 떨어져 있는데 난간석을 두름. 이곳의 문인석은 웃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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