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사를 역임하신 5분의 선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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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07-18 15:18 조회1,791회 댓글2건본문
◆ 김윤종(金胤宗) 1486년(성종16)~1567년(명종22)
安東人으로 字는 건지(建之)요, 참판 예생(禮生)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8)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543년(중종38) 3월에 윤중형(尹件衛)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545년(인종원년) 11월에 떠났다. 함께 재임한 제주판관은 황윤관(黃允寬)이고 대정현감은 윤사상(尹思商)이다. 「왕조실록」에 의하면 1543년 12월 대정(大靜) 경내에 남은 주민이 적어 소복지책(蘇復之策)을 늦출 수 없어 제주목사는 이웃 지경으로 옮겨 사는 자를 찾아내어 모두 본현에 귀환시켜야 했다.
선생안(先生案), 관풍안(觀風案), 관안(官案), 왕조실록(王朝實錄).
척약재 김구용-김명리-김맹헌-김자양-김예생-김윤종
◆ 김세구(金世龜)1632(인조10)~1685(숙종11)
성명: 김세구
본관: 안동(安東)
생존기간: 1632(인조10)~1685(숙종11)
관련사건:
字는 이문(以文)으로 충무공 김응하(金應河)장군의 孫子이다.
1665년(현종6) 祖父 충무공으로 인하여 영의정 정태화가 천거하여 선전관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1676년 온성부사(穩城府使). 1678년(숙종4) 태안군수(泰安郡守), 1683년 상호군(上護軍).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제주목사(濟州牧使)를 역임하고 濟州 임소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참고문헌: 안동김씨 부사공파보, 승정원일기
◆ 김윤(金潤) 1698년(숙종24)~1755년(영조31)
安東人으로 字는 덕보(德甫)이며 85대 통제사 김중원(金重元)의 조카이다.
癸卯(1723) 武科에 올라 1742년 전라수사, 제주목사, 경상우병사, 평안병사, 회령부사를 역임하고 1754년(영조30) 윤3월에 116대 통제사에 부임하였다. 1743년(영조19) 3월에 제주목사(濟州牧使)에 부임하여 이듬해 갑자년 9월에 교체되어 떠났다. 별도로 준비된 곡식 5백 섬으로 목자고(牧子庫)를 설치하여 공마(貢馬)의 자료로 공급하였다. 정사를 함에 엄정하고 명백히하여 한결같이 사랑하였으니 떠난뒤에 애석히 여겼다. 1744년 초여름(甲子首夏) 목사(牧使) 김윤(金潤)의 이름이 새겨진 마애명(磨崖銘)이 방선문(訪仙門)의 바위에 있으며, 재임중에 효자<홍달한행장(洪達漢行狀>을 지어 정려(旌閭)하고 열녀 강유진을 포상 역시 정려(旌閭)하였다. 1755년 2월 이하징(李夏徵)의 역모사건에 연좌되어 파직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후에 무고임이 밝혀졌다. 예조참판 윤광소(尹光紹)가 묘갈문을 찬했다.
<제주도 방선문 마애명 목사 김윤>
◆ 김영수(金永綬) 1716(숙종42)~1786(정조10)
초 휘는 영적(永績), 字는 중약(仲若). 군사공 휘 칠양(七陽)의 후손. 갑자무과(甲子武科)와 병인중시(丙寅重試)를 거쳐 가선대부에 올랐다. 흥해군수(지금의 포항)와 김해부사, 전라우, 좌수사를 거쳐 함경도병사, 제주목사 겸 방어사, 홍충도 병사를 역임하고 통제사에 부임하여 통영 임소에서 순직 하였다. 여러 고을을 다스리며 훌륭한 목민관으로 백성들의 신임이 두터웠다. 통영의 세병관에 타루비와 사적비가 있고 흥해(포항)와 제주, 여수에도 선정비가 있으며 후에 청덕사에 배향되었다. 사후에 두차례에 걸쳐 청백리에 천거되었으나 녹선되지 않았다. 덕행과 학문으로 선비의 추앙을 받은 무인이다.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필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주도 관덕정의 탐라형승(耽羅形勝)과 방선문의 환선대(喚仙臺), 용연의 마애시, 한산도 제승당(制勝堂)의 대자 현판등은 가히 압권이며, 흥해의 권무당기의 필적도 뛰어나다. 특히 대자에 뛰어났으며 시문도 여러편을 남겼다.
백사 이항복 선생이 찬한 이충무공유사의 필적과 운주당 현판 글씨는 기록은 있으나 현존 하지 않는다.
조부는 청백리 탁청헌(濯淸軒) 두남(斗南)이며 아버지는 의영고직장을 지낸 홍석(弘錫)이다.
◆ 김수기(金守基) 1762(영조38)~1833(순조33)
본관은 安東人, 字는 문왕(文王) 어영대장 김응해(金應海)의 後孫이다.
1784년(甲辰) 무과에 급제하여 1791년(정조15)에 우후(虞侯)에 이어서 충청도수군절도사, 제주목사(濟州牧使), 1817년(순조17)경상좌도병마절도사. 함경도절도사. 경기수사겸 삼도통어사(京畿水使兼三道統禦使)등을 역임 하였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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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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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놀랍습니다. 2분(김윤종, 김영수)밖에 몰랐던 제주목사에 3분이 더 있음을 찾아 내셨습니다. 정말 크신 노력입니다.
제주의 역사서가 다시 쓰여져야 할 것으로 압니다.
김윤선조님의 방선문 마애명은 시가 함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름만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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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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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제주문화원(김찬흡) 발행 제주인명사사전에 김세구목사를 광산인으로, 김윤목사를 상산인으로 표기하여 많은 자료들이 오류를 범했습니다. 저자인 김찬흡 현북제주문화원장에게 전화통화를 하여 자료를 보내 드렸습니다만 이미 배포된 많은 책자들을 수정하기란 쉽지 않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