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산의 맺힘과 풀림(1)-맺힘과 풀림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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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7-25 11:32 조회1,532회 댓글0건본문
지난 2007년 4월 1일 저와 우리 소문중 모두의 숙제였던 행사 하나를 마쳤습니다.
제학공(휘 익달)의 9대손이시며 저의 13대조이신 참판공(휘 素) 선조님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선조님이 영면하고 계신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산 1번지 보광산 정상의 묘소에 후손들이 모여 산신제를 올린 행사였습니다.
이에 이 행사와 관련한 전 이야기를 정리해 가며 행사 후기를 작성 봅니다.
普光山의 맺힘과 풀림
<차 례>
1. 맺힘과 풀림의 인식
2. 참판공의 별세와 행장
3. 한양에서 괴산으로, 그리고 명당터를 찾아서
4. 보광산 전설
5. 역사와 전설, 그리고 사실과 허구
6. 산신 고유제 준비
7. 토지지신이시여
8. 자료 해설과 인사
9. 행사를 마치고
10. 부록(전설 및 주요 자료 종합)
普光山의 맺힘과 풀림
-普光山 祭禮行事-
1. 일시 : 2007. 4. 1(일). 10:00-15:00.
2. 장소 :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산1번지 일대
3. 주관 : 안동김씨 제학공파 참판공(휘 素) 종손가
4. 참석자 : 22명
*참판공(휘 素) 종가 : 태섭, 승용, 한용, 항용, 예진, 오병준(외손)
*통덕랑공(휘 南採-鼎光) 후손 : 장응, 태선, 태관, 태화(內子), 태억
*통덕랑공(휘 南採-晉光) 후손 : 상훈(內子), 영회(內子), 태갑, 태성, 태현(영회 子, 內子)
*안주공(휘 繁) 후손 : 상석
*익원공(휘 士衡) 후손 : 雲山大師(金泰國, 보광사 스님)
5. 내용
1)보광산 토지지신 고유제 봉행
2)참판공(휘 素), 승지공(휘 龜萬) 묘소 참배
3)묘소 정비(묘역 앞 잡목 제거, 제절 평탄작업)
4)휘 동길(東吉)공 묘소 참배
5)중식 및 해설 자료 설명
6)휘 훈(燻)공 묘소 참배
7)문당묘원(文塘墓苑) 참배
1. 맺힘과 풀림의 인식(認識)
2007년 4월 1일, 1666년(현종7)의 맺힘은 331년이 지나서야 풀림으로 매듭지어 졌다. 어느 시대든지 역사는 발전과 개혁이라는 명분론(名分論)을 내세우고 이를 추진해가는 이들에 의해 진행되고 기록되어 간다. 그런데 종종 그 역사과정 속에는 추진측에 의해 피해를 입거나 뼈저린 한(恨)을 품는 자들이 발생하곤 한다. 이 피해와 한으로 맺혀진 응어리를 맺힘이라 하자.
왕조시대(王朝時代)의 피해자들은 이 맺힘을 스스로 풀어낼 수 없는 한계 조건으로 인해 대부분 체념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 맺힘 속의 가, 피해자 관계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반대 상황으로 바뀌는 경우가 자주 있다. 즉 가해자의 업적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 속에 부끄러움의 역사로 변해가고, 피해자의 한(恨)은 구전설화(口傳說話)로 전승(傳承)되면서 큰 힘과 가치를 얻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또한 역사는 이 맺힘을 반드시 풀림으로 발전하도록 인도하며, 그것도 맺힘을 갖게 한 자가 먼저 풀어내야만 되도록 대부분 진행된다.
그리고 이 풀림의 완성은 맺힘을 갖게 한 측의 적극적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며, 또한 넉넉한 풀림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양자는 융합되어 하나로 뭉쳐진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역사의 과정이요,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사회는 휴머니즘(Humanism)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상사회(理想社會)로 점점 다가서게 된다.
바로 그 풀림의 과정 한 가운데에서 이를 추진하는 위치에 보잘 것 없는 필자가 서 있었다. 그것은 바로 331년간 이어져 온 충북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산1번지의 보광산 정상의 이야기이다. 그곳에 계신 참판공(휘 金素-필자의 13대조)과 승지공(휘 金龜萬-필자의 12대조) 선조님의 묘소 조성과정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전설 이야기요, 그에 따른 맺힘과 풀림이다.
필자는 이 보광산의 맺힘과 풀림의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적지 않게 고민하고 갈등했다. 풀림을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준비하다가도 때론 남의 일처럼 객관화시켜 버리거나 억지로 합리화시키며 태연자약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8남매의 우리집은 부모님으로부터 전 형제자매들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몹시 혼란스러웠다. 필설(筆舌)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충격으로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필자의 처(妻)도 병원에 입원하여 대수술을 받았다.
여기서 생각을 넓혀 근친(近親)들의 집안도 살펴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로 놀라운 사건들이 그동안 발생했으며, 현재도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어 하고 있다.
더욱 범위를 넓혀 참판공(휘 素) 선조님 이하 후손들의 모습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후손 수와 종친간의 친목 정도, 중요 인물 등을 중심으로 살폈다. 현재 총 310가구(총인원 약 775명. 1990년 간. 안동김씨 제학공파보 기준) 가운데 59가구(8.1%)만이 겨우 그 소재가 파악되어 있고, 그 중에서 1992년에 조직, 운영되고 있는 비안공 문중회의 시제와 총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불과 14명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2005년 4월, 양덕공(휘 時說)의 묘비와 문관석 건립 때는 근친(近親)이나 종친(宗親) 한 사람의 협조 없이 오직 종손이신 부친과 필자의 활동만으로 추진해야 했다.
승지공(휘 龜萬) 이후의 인물들을 살펴 보았다. 문과에 합격하고 출사(出仕)한 분은 겨우 2분으로 참의공(휘 汴光, 1723년)과 교리공(휘 恒光, 1773년)이 전부요, 진사나 생원과에 합격한 사람은 부호군(휘 南挺) 1분뿐이다. 또한 180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정(政), 관(官)계나 학계, 재계 등에서 크게 활약한 인물도 안타깝게 없다.
여기서 근대 우리 문중의 쇠약 원인은 조선조 선조 이후의 붕당정치에서 동인과 남인계열에 속했던 우리 문중이 1694년(숙종20)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노론 세력에 의해 계속해서 눌려 지내야 했고, 1800년대 이후 신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勢道) 또는 독재정치, 그리고 대원군의 강력한 사림파 탄압 정책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와 같이 우리 집안과 근친 및 문중의 상황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것일까?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과 현상들은 하늘이 의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참으로 답답하기만 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이를 불교적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우리 문중과 집안이 이런 어려움에 처할 만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인과응보(因果應報)적 업보(業報)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있었다면 그건 무엇일까?’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다.
딱 하나 떠오르는 것, 그건 바로 보광산 묘소를 둘러싸고 있는 사실과 전설의 이야기였다. 1666년 여름, 필자의 13대조이신 참판공(휘 素)께서 돌아가시자 그 아드님이신 승지공(휘 龜萬)께서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보광산에 있던 봉학사(鳳鶴寺) 절을 강제 폐사(廢寺)시키고 부친의 묘소를 조성한 일이 생각났다. 그 일로 인해 전설도 만들어 졌다. 전엔 그저 흥미 삼아 듣고 별 관심 없이 흘려버렸던 것이다.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월 사이 처가 입원해 있는 병원 침상에서 그 전설들을 다시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설 내용을 기초로 하여 우리 문중, 우리 집안의 실제 역사를 상호 대비시켜 가며 정리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역사와 전설의 양자 사이엔 깊은 연관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저 단순하게 우연의 일치라고 간과해 버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방법론을 찾았다. 숙고(熟考) 끝에 보광산의 봉학사 폐사로 인해 피해를 입고 맺힘을 갖게 된 이들을 위한 풀림 행사를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짧고 우둔한 필자는 토지지신(土地之神)과 과거의 피해 영혼들께 고유제(告由祭) 및 진혼제(鎭魂祭)를 올려 신(神)께 아뢰고, 한(恨) 맺힌 영혼들의 넋을 달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지난 설 명절에 아버님께 간곡하게 건의 드렸다. 아버님도 대환영이셨다. 곧 행사 날짜를 4월 1일로 잡았다. 갑자기 바빠졌다. 먼저 참판공과 보광산 일대와 관련한 모든 자료와 전설, 그리고 우리 가문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 역사 과정 등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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