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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받은 몽중시로 인조반정이 있을 것을 예지한 김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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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9-10 20:07 조회1,9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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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본 역사]〈32〉인조 반정 예지2
입력: 2007년 08월 20일 21: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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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받은 몽중시로 인조반정이 있을 것을 예지한 김시양


판서 김시양은 광해군 때 종성으로 귀양을 갔는데, 꿈에 어떤 이가 시를 지어 주었다. 그 가운데 한 연이 다음과 같다.

不到觀魚海(부도관어해) 관어대가 있는 바다에 가지 않고

何由見太平(하유견태평) 어떻게 태평성대를 볼 것인가

그 당시에는 이 뜻을 알지 못했다. 그 뒤 영해로 귀양지를 옮겨 관어당 아래에 거처하게 됐다. 그리고 계해년 인조반정이 일어난 후 비로소 서울로 돌아왔다.<기문총화>



임자년(1612년, 광해군 4년)에 내가 과거의 시제 때문에 죄를 짓고 종성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10월에 유배지에 이르러 한 달 남짓 됐을 때, 꿈속에서 귀양지를 남쪽 지방으로 옮겼는데 고을 이름 아래에 해(海)자가 있어, 평해나 흥해인 것 같으나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 뒤 7년 만인 무오년에 오랑캐의 변란이 일어나 서북 지방에 귀양 간 사람들을 남쪽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렸다. 나는 영해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었으니, 이때에 이르러 그 꿈이 비로소 맞았다. 길흉과 영욕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없는데, 저 세력과 이익을 얻기 위해 악착스럽게 도모하고 힘쓰는 자들은 너무나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자해필담>



김시양(1581~1643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광해군 시절 전라도도사(都事)가 되어 향시(鄕試)를 주관할 때, 왕의 실정을 비유한 시제를 출제했다가 종성에 유배됐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여러 관직을 지냈다.

‘기문총화’에 실려 있는 몽중시 이야기에서, 김시양이 기억해낸 것은 단 한 연뿐이다. ‘고기를 보는 바다에 가지 않고서, 태평성대를 볼 수 없네’라는 짧은 시였지만, 가장 핵심적인 상징으로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시양이 유배지인 종성에서 이 꿈을 꾼 때가 임자년으로, 정확히는 그 후 6년이 지난 무오년 1618년(광해군 10년)에 오랑캐의 변란이 일어나 남쪽인 경상북도의 영해로 옮기게 될 것을 예지하고 있다. 그 후 다시 5년(꿈을 꾼 후로부터는 11년) 뒤인 계해년(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유배지에서 벗어나 서울로 돌아오게 될 것을 이 꿈은 예지하고 있다.

이처럼 몇 년 뒤를 비롯해 몇 십 년 뒤에 일어날 일까지 예지해 주는 실증적인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꿈에 따라서는 꿈을 깨자마자 즉시 실현되는 것에서부터, 2∼3일 내에 실현되는 경우도 있고, 그것이 몇 주, 몇 개월 후, 심지어 20∼30년 뒤에 실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조반정과 관련된 김시양이 꾼 또 다른 꿈사례를 살펴본다.

병진년 사이에 김시양이 북쪽 변방에 귀양 갔는데 이때 광해의 어지러운 정사가 날로 더 심해지던 해였다. 김시양이 원종(인조의 아버지)이 반정하는 꿈을 꾸었다. 김시양은 그 꿈을 이상하게 여겨 일기에 “옥부(玉孚)가 불을 들었으니 범띠 해(虎年)의 일이다”고 기록하였다. 이는 원종의 휘가 옥과 부를 합한 부이고, 중종이 범띠 해인 병인년에 반정을 하였으므로 이런 은어를 쓴 것이다.

무오년에 영해로 귀양지가 옮겼는데, 허의보가 찾아와서 광해의 어지러운 정치를 언급하며 “조종의 쌓은 덕이 반드시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니, 왕자 정원군은 기량이 있고, 재상 윤방은 또한 비범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김시양이 꿈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였더니, 2년 후에 원종이 세상을 떠나고, 계해년에 원종의 맏아들인 능양군이 반정하여 인조 임금이 되었다.<하담록, 연려실기술>



김시양은 반정의 꿈을 꾸었으나, 성공하기 전에는 역모로 몰릴 만한 이야기였기에 주의하였다. 있는 그대로 일기에 썼다가 혹시 나중에 말썽이 될까 정원군의 이름인 부를 옥부로 은밀히 표현하였다. 반정의 의미를 이전에 중종이 호랑이 해인 병인년에 반정을 하였기에 ‘범띠 해’에 불을 든 것으로 적고 있다.

꿈속에서는 인조의 아버지로서, 나중에 원종으로 추존되는 정원군이 반정하는 꿈을 꾸었으나, 정작 꿈의 실현은 그의 맏아들인 능양군이 반정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김시양이 꾼 꿈은 사실적인 미래투시의 꿈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미래예지 꿈으로 보아야 한다.

당시 폐비를 서궁에 가두는 등 광해군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반정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잠재의식적인 마음에서 이러한 꿈을 꾸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될 것을 예지한 김시양의 다른 꿈 사례로 미루어볼 때, 김시양은 미래예지적인 꿈을 꾸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그 표현방법도 고차원적 상징기법이 동원되어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순래〉

필자 소개:춘천기계공고 국어교사, 한라대 강사, 꿈해몽전문가, 문학박사(한문학) ‘파자이야기’, ‘꿈해몽백과(공저)’ 등 8권이 있으며, ‘홍순래박사 꿈해몽’(http://984.co.kr, 984+접속버튼)의 유무선 사이트를 통해 꿈에 대한 연구와 정리를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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