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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月十五夜 <백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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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9-24 14:23 조회1,4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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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대보름 밤에


창공에 떠도는 둥근달 우두커니 바라보고

가을바람에 떠는 오동잎 소리도 들어본다

등잔 앞에서 잠깐 고향 꿈 맺으니

안개비 내리는 물가에 때 이른 기러기 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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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집>

八月十五夜


坐看氷輪輾碧空

又聞梧葉響西風

燈前暫結鄕關夢

煉雨汀沙叫早鴻



<충청북도 홈페이지>

김득신 [金得臣]  [ 증평군 / 인물 ] 

시    대: 조선시대 

설명

조선의 시인. 자는 자공(子公), 본관은 안동, 호는 백곡(栢谷)·귀석산인(龜石山人), 충무공 시민(時敏)의 손자, 부제학(副提學) 안흥군(安興君) 치(緻)의 아들. 어머니는 사천(泗川) 목씨(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 김씨이며,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1642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당시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1662년 (현종3) 증광문과(增廣文科) 병과(丙科)로 급제. 장악원 정·지제교(掌樂院 正·知製敎) 등을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를 지냈다. 뒤늦게 벼슬에 올랐으나 장차 일어날 사화(士禍)를 예견하여 벼슬을 버리고 괴산읍 능촌리에 있는 취묵당(醉默堂)에 내려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74세에는 사도시정으로 증광시 시험관이 되었고, 78세에는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80세에는 가선대부에 올랐고 안풍군(安豊君)으로 습봉되었다. 이듬해인 81세에 생을 마쳤다. 묘는 충북 괴산군 증평읍 율리에 있다. 당대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이 나 있으며 문집으로 <栢谷文集>이 있고 평론집인 <終南粹言>,<終南叢志> 등이 있다.

백곡은 백이전(伯夷傳)을 1억1만3천번을 읽고 그의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醉默堂)'라 했으며 그의 뛰어난 문장이 세상에 알려지니 효종이 그의 '용호한강시(龍湖漢江詩)'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문보다는 시, 특히 오언 · 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백곡집 외에 시화집인 '종남총지(終南叢志)'가 있으며 그밖의 작품으로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은 '국순전' '국선생전' 등 고려의 한 시대만 한정된 줄 알았던 술 가전계통의 소설이 조선조에도 그 면모가 지속됐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곡은 노둔한 천품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여 시(詩)로 일가를 이룬 '고음과 다독' 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경세치평(經世治平)이라는 유가적 이상을 당쟁의 현실 속에서 실천하지 못한 번뇌를 토로하기도 하지만 진보적인 시(詩)의식을 가지고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변천기에 활동했던 문예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실제 그는 창작활동의 소산으로 주옥같은 시를 남겼는가하면 한시비평의 제기준을 마련한 비평가로 한국한문학사에 확고히 자리매김돼야 할 것이다.

(자료출처 : 안동김씨 홈페이지 - http://www.iandongkim.com)



O 김득신 신화

김득신은 성격이 느리고 둔해서 공부할 때 사기(史記)나 한시(漢詩) 그리고 한유(韓愈)나 유종원(柳宗元)을 1억 1만 3천번을 읽어 당호를 ‘억만재(億萬齋)' 라 한뒤,


진, 한, 당, 송, 글을 찾아서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일만번 읽었네

백이전의 기괴한 문체가 너무 좋아서

훨훨 읽는게 구름을 넘어가 듯 했다네


라는 절구를 지었는데 어느 해 흉년과 질병으로 나라에 많은 사람이 죽으니 친구들이 “죽은 사람 수와 네가 책을 읽은 수와 어느 것이 많은 것 같으냐?” 면서 곯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어느 해에는 목화관을 지나가다 동명(東明) 정두경(鄭斗卿)의 ‘추풍정두경'이란 시구를 여러번 뇌이다가 자기 이름을 넣어 ‘추풍김득신(秋風金得臣)'으로 바꿔 보더니 풍운이 맞지 않자 “우리 아버지께서 이름을 잘못 지어 주셨어” 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런데 병자호란때 지은 시에,

낯에는 언제나 들판에서 울음소리 들리고

꿈에서는 오랑캐병사를 피해 다니네


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택당(澤堂) 이식(李植 : 1584~1647))이 감탄해, “자네 시에는 두시(杜詩)의 견조가 현저하네“ 하고 호평했다고 한다.



김득신은 시를 모르는 사람이 칭찬할 때 좋아하지 말고 혹평을 할때도 기분을 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은 김득신이 지은 좋은 시가 세상에 많이 전해 지고 있지만,

호서를 지나고 진관을 향하니

먼 길 가도가도 쉴 틈도 없네

나귀 등에서 잠 자다가 눈을 뜨니

구름아래 흰 눈 남은 저 산은 어디멘고


라는 구절은 시운이 매우 좋은 작품인데도 그의 ‘백곡집'에 빠져 있는 것은 마치바다에서 진주를 캐면서 월명주(月明珠)를 버린것과 같다고 아쉬워 했다.

 


괴산 정호 묘소 등 문화재 지정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09-03 13:52 

(청주=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도는 괴산군 감물면 지장리 장암(丈巖) 정호(鄭澔) 묘소 등 4건의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예고했다고 3일 밝혔다.


도가 지정예고한 유물은 정호 묘소(기념물 제141호), 청원군 백족사(白足寺) 삼층석탑(三層石塔. 문화재자료 제59호),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 고가(白雲里 古家. 〃 제60호), 괴산군 괴산읍 취묵당(醉墨堂.〃 제61호) 등이다.


도는 정호는 조선 숙종때 영의정을 지냈고 성리학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고 백족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탑으로 전체적인 균형미와 짜임새가 돋보인다고 지정 이유를 들었다.


또 백운리 고가는 1842년 건립된 전통가옥으로 기와의 툇마루 청판 등에 조선시대 제작기법이 잘 표현돼 있으며 취묵당은 1662년 건립된 독서재(讀書齋)로 보존상태가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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