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장군의 손자 며느님 안동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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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7-11-13 13:23 조회1,724회 댓글1건본문
형조·공조판서 및 총융사 신준(申埈)의 묘
경기도 광주시 실총읍 신대리 산1-1
신준의 자는 평중(平中), 시호는 충정(忠靖), 본관은 평산, 신립(申砬)의 손자, 신경진(申景禛)의 아들이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안동김씨로 부는 부사 질(晊)·조부는 병사 수남(壽男)·증조는 현감 탁(濯)·외조는 별좌 용인 이철광(李哲光)으로 합부하였다.
인조 1년(1623)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에 책록되었고 평흥군에 봉해졌으며, 강화유수, 수원부사를 거쳐 효종 4년(1653)에는 어영대장에 이르렀다. 그 후 형조·공조판서를 거쳐 총융사를 역임하였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묘는 신대리 평산신씨 충장공 묘역 맨 위에 있다. 묘갈(墓碣)은 판서 박필주(朴弼周) 찬, 묘지(墓誌)는 손자인 영의정 완(玩)이 찬하였으며, 시장(諡狀)은 판서 윤급(尹汲)이 찬하였다.
☞안동김씨 : 영의정 신경진(申景禛)의 아들이며, 신립(申砬)장군의 손자인 형조·공조판서, 총융사 충정공 신준(申埈)의 배위 안동김씨는 선안동김씨 안렴사공파의 후손이다. 그 가계를 살펴보면,
아버지 김질[金晊, 선조 5년(1572)~인조 6년(1628)]은 선안동김씨 안렴사공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으로, 자는 여회(汝晦), 선조 27년(1594)에 무과에 급제하고 누진하여 영변부사에 임명되었으나 광해 혼조에 불사하고 후에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조부 김수남[(金壽南, 명종 2년(1547)~선조 28년(1605)]의 자는 인보(仁甫), 선조 7년(1574)에 무과에 급제하고 누진을 거듭하여 남병사(함경남도 병마절도사)에 이르렀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증조 김탁(金濯)은 북병사와 훈련원도정을 지낸 김공석(金公奭, 1477∼1553)과 정부인(貞夫人) 안악(安岳)이씨[이조좌랑 희순(希舜)의 딸, 대사간 평(枰)의 손녀] 사이에 2남(김탁, 김황)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55년 제용감참봉(濟用監參奉)으로 있었고, 동생 김황(金滉)은 선공가감역(繕工假監役)이었다.
명종 7년(1552) 부친 김공석이 청홍도(淸洪道)의 수영(水營)에서 질병으로 향년 77세로 세상을 마치자, 다음 해 2월 25일에 터를 가려 여주(驪州) 사동(蛇洞)의 선영 곁에 장례를 지내고, 명종 10년(1555) 고애자(孤哀子) 김탁이 빗돌을 갈고 깨끗하게 한 뒤에 4촌형 김주(金澍)에게 청하기를, “선군의 자취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의당 형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형이 꼭 명을 지어주시오.” 하였다. 김주(金澍)가 숙부 김공석(金公奭)의 신도비문을 지었고, 당대의 명필 송인(宋寅)이 글씨를 쓰고, 박영(朴泳)이 전(篆)을 써서 신도비를 세웠다.
김탁은 박세도(朴世燾)의 딸을 아내로 맞아 2남 4녀를 낳았다. 장남 수남(壽男)은 후에 남병사를 지냈다.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참고문헌 : 우암집(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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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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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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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신립장군의 손자 신준의 배위는 안렴사공파 후손으로 여주 백양동에 모셔져 있는 부사공(휘 晊)의 따님이셨군요. 감사합니다.
홈 안렴사공파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