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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집 서문(하륜) - 유림학당 김국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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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8-01-03 16:58 조회1,557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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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약재집 서문 


予少也遊於牧隱先生之門。坐客有若圃隱鄭先生,惕若齋金先生,陶隱李先生者。視其容儀。聽其談論。▓其爲一代之人物也。

내 어렸을 적에 목은선생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제자 중에는 포은 정(몽주)선생, 척약재 김(구용)선생, 도은 이(숭인)선생 같은 이가 있었다. 그 용모를 보고 그 말씀을 들으니 당대의 인물이 될만하였다.


自是心竊景慕焉。與之遊從者二十餘年。相許之分誠不淺矣。金先生將奉使遼東。予勸以一言。先生重違朝命。不敢請而去。卒有大理之行。不克復命。嗚呼惜哉。

이때부터 마음속으로 우러러 함께 왕래한지가 20여년이니, 서로 나눈 정분이 참으로 얕지 않다. 김(구용)선생이 요동에 사신으로 가고자할 때 내가 한 마디 권하였으나, 선생이 거듭 조정의 명을 어김에 감히 청하지 못하고 떠나 보냈다. 마침내 형관의 처형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으니 아! 슬프다.


厥後十餘年間。圃隱,陶隱相繼淪沒。而牧隱先生亦已乘化矣。每念平生之好。不能不涕泗交頤也。今予謁告來鄕。拜掃先塋。留止旬日。府判君乃惕若齋之仲子。以予爲父。執待以厚。

그 뒤 10여년사이 포은, 도은이 연이어 돌아가고 목은선생 역시 벌써 돌아가셨다. 매양 평소의 우정을 생각함에 눈물이 턱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내가 고향으로 낙향하기를 고하여 선영을 돌보며 머문 지 열흘인데, 부판군 곧 척약재의 둘째아들이 나를 아버지로 여겨 대접하기를 후하게 하였다.


一日。奉其遺稿來示之曰。吾先子所著詩與文不爲不多。然以不滿其意。隨作而棄。幸此若干篇僅存。竊欲鋟梓而傳後。知吾先子者莫如子。請子幸題一言于卷端。

하루는 아비의 유고를 가져와 보이며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지으신 시와 문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뜻에 차지 못하여 짓는 대로 버리셨습니다. 다행히 약간의 작품이 겨우 보존되었으니, 그윽이 책자로 내어 후손에게 전승하고자 합니다. 아버지께 선생님만한 분이 없는 줄을 알기에, 선생님께 책머리에 한 말씀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予感其言。受而讀之。恍然若聆音聲而接辭氣矣。

내가 그 말에 감격하여 받아 읽음에, 황홀하여 (김구용선생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접하는 듯 하였다.


嗚呼。詩之道亦難矣哉。魏晉而上。作者去古未遠。然其不違於三百篇之意者鮮矣。詩止於唐。而唐人之音亦有始正變之異。其入於正音者亦不爲多矣。

아! 시의 도리가 어렵구나. 위진 이전에는 시인들이 옛날과 멀지 않았음에도 시경의 뜻을 어기지 않는 이가 적었다. 시는 당에서 정점에 올랐음에도 당인들의 음률 또한 좋고 나쁜 차이가 있으니, 그 바른 소리에 들어간 이가 역시 많지 않다.


況吾東方。地與中國相遠。風氣不同。言語亦異。苟非天之賦與高出於衆人者。安能變其固滯而近於正音哉。牧隱先生學於中國。卓爾有高明之見。其於東人之詩。少有許可者。獨於先生之作。有所嘆賞曰。平澹精深。絶類及菴 。詩而至於平澹精深。亦豈易哉。

더욱이 우리나라는 땅이 중국과 멀어 풍토와 기운이 다르고 말 또한 다르니, 진실로 천부적으로 무리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딱딱하게 막힌 것을 변화시켜 바른 소리에 근접할 수 있겠는가? 목은선생은 중국에서 공부하셔서 탁월하게 고명한 견해가 있으셨으니, 그 우리 나라 시인 중에 좋다고 인정하신 것이 적은데, 유독 선생의 작품에는 찬탄하고 칭찬하여, “평탄하고 고요하며 정밀하고 깊어, 무리보다 뛰어난 경지에 올랐다.”고 하셨으니, 시로서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又於衆作之中。嘗擧先生一句曰。可謂頂門上一針。信乎先生之詩格高出於一時。非他作者所能髣髴也。則此若干篇宜亟刊行。使夫學者有所矜式也。故不以文拙辭。

또한 어러 작품 가운데, 선생의 한 구절을 감상하여 말씀하기를, “정문 일침이라 할 만하다.”고 하셨으니, 선생의 시격이 당대에 우뚝 솟아서, 다른 작자들이 미칠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있으니, 이 약간의 작품이나마 마땅히 빨리 간행하여 배우는 이들이 모범으로 삼게하여야겠기에 내 조잡한 솜씨로 서문을 사양하지 못하노라.


建文元年九月旣望。奮忠仗義定社功臣,資憲大夫,政堂文學兼判都評議使司事,修文殿大學士,提點書雲觀事,晉山君浩亭河崙。序

건문 원년 9월 16일. 분충장의정사공신, 자헌대부, 정당문학겸판도평의사사사, 수문전태학사, 제점서운관사, 진산군 호정 하륜이 쓰다.


<출전> 유림학당(김국회) 홈페이지 번역마당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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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유림학당 김국회 종친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현재 공주사대부고 3학년 담임을 맡고 계셔서 바쁘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충렬공실기와 관련하여 번역및 교정을 힘 닿는데까지 도와주시기로 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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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저씨, 귀한 글 감사합니다.
유림학당 대부님께서 바쁘신데도 참여하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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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척약재집 서문 역문 잘 보았습니다. 홈 &lt;김구용&gt;란에 올리겠습니다.
님께서 충렬공 실기 편집 사업에 동참하신다니 더없는 기쁨입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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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훌륭한 번역문 잘 보았습니다.
번역문중 [제자 중에는 포은 정(몽주)선생, 척약재 김(구용)선생..]라고 되어 있으나
본문이[ 좌객유포은정선생,척약재김선생....]으로 보아 제자라기보다는 손님중에...  교유하시는분 중에...
라고 되면 어떨런지요?  실제로 포은선생이나 척약재선생은 목은선생의 제자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건방졌다면 용서하세요.

김국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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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좌객"은 '제자'가 아닌 '자리한 손님'으로 푸는 "솔내"님의 말씀이 맞을 듯 합니다. 거친 번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