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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답사자료(10) 원성왕의 전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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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6-07 18:54 조회1,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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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룡과 원성왕 전설



호국룡과 원성왕





795년 여름 어느날, 원성대왕은 당나라의 사신을 전송해 보내고 뜰 앞을 거닐면서 산책하였다.



당 나라에서 사신이 올 때에는 나라에 경사가 있어 축하하러 온다던가 당 나라의 왕이 전하는



글을 가지고 온다던가 하며, 먼길을 오는 것인데, 이번에는 별로 볼일도 없는데 한 달이나 묵어 갔다.



오늘은 산 구경을 하겠다 하며 돌아다니다가 부랴부랴 오늘 급하게 떠나는 것이 이상하였다.



금년에 4월부터 비가 오지 아니하여 곡식이 말라 걱정되어 여러 곳에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간신히



비가 와서 한 시름 놓고 있는데, 또 때 아니게 서리가 내려 곡식들이 얼어붙을 지경이 되었으니



임금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근심스러운 심정을 달래보려고 산책하는데 문득 아름다운



여자 두 사람이 절하고 말했다.



「저희들은 동지와 청지에 사는 두 호국룡의 아내들입니다. 이제 당나라 사신이 하서국 사람들을



데려와 와서 우리 남편인 두 호국룡과 분황사 팔각정에 사는 호국룡을 주문을 외어 작은 물고기로



모습을 바꾸어 통 속에 넣어 가지고 갔습니다. 폐하께서 급히 하서국 주술사들에게 명령하여 우리



남편들과 분황사 호국룡이 다시 청지와 동지의 팔각정에 살게 하여 주십시오. 임금은 그제서야



당나라에서 사신이 온 까닭을 알았다.



청지는 진평왕 때 지은 동천사의 샘으로 이 샘은 동해까지 동해있어, 동해의 용이 가끔 설법을



들으러 오는 영검있는 샘이다. 동지의 호국룡과 분황사의 팔각정의 호국룡이 있는 한 신라가



자기 나라에 고분고분 복종하지 않을 것을 알고 사신을 보내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



임금님은 알았으니 안심하고 돌아가 있으라 하여 두 여자를 보내고 날랜 기마병 50명을 몸소



거느리고 당나라 사신의 뒤를 쫓아갔다. 쉬지 않고 달려서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려 할 때야



사신들이 묵고 있는 하양관에 이르렀다.



임금은 그 곳 객사에 잔치를 베풀어 놓고 당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한달 동안이나 계시다가



이렇게 이별하게 되니 너무 섭섭하여 단 한시간이라도 더 즐겁게 석별의 정을 나누고 떠나시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뒤를 쫓아 왔습니다 하며 술을 권했다. 당나라 사신은 조금 마음이 불안했으나



임금이 용의 사건을 알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음으로 안심하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술을 마셨다. 하서국 사람들도 사신과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다음 임금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당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풍토가 다르고 풍속이 다른 나라에 가면 무엇이나 기념으로 갖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상정일



것입니다. 귀관께서 우리나라의 용을 갖고 싶은 것은 이해하겠으나」



하고는 하서국 사람들을 향하여 노기를 띠고 언성을 높여 호령하였다.



하서국의 네놈들은 나라의 호국룡을 저주하여 훔쳐다가 팔아먹다니 네놈들은 용서 못하리라.



이제 세 용을 내놓지 않는다면 네놈들은 이 자리에서 사형에 처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에 하서국 사람들은 물고기가 들어 있는 대통을 내어놓고 목숨만 살려 달라고 빌었다.



외국 사신 앞이라 특별히 살려주는 것이니, 돌아가라 하고 임금은 대통을 받아들고 돌아와서



세 우물에 각각 놓아주었더니 물고기들은 한 길씩이나 솟구치며 춤을 추더니, 다시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당나라 사신은 원성왕의 명철함에 감탄하여 본국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용을 훔칠 생각을 아니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고 저의 임금께 아뢰었다.





















▣ 김태서 -

▣ 김항용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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