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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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6-12 03:21 조회1,439회 댓글0건본문
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15
<증평문화 창간호 (1997)>
▣ 김득신의 逸話 -01
---류근철 (증평읍 남차리 575, 청안향교 장의)
김득신(1604-1684)은 서울 龍湖(현재 용산)에서 출생한 청백리의 한 사람으로 호가 栢谷 또는 龜石山人으로 나이 39세 진사시험에 합격하고, 耳順(60세)이 가까워서 중광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던 청백리로 나이들어 사화에 연루될 것을 꺼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책을 읽으며 神養性(이신양성-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하게 수양함) 한 사람이다.
그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손자요, 남봉 김치의 아들로 행동이 느리고 둔하며 말을 더듬었다고 전하는데, 어느해 질병과 흉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친구들이 "죽은 사람 수와 자네가 책을 읽은 수는 어느 것이 더 많은 것 같으냐?" 고 골릴 정도로 많은 책을 읽기도 한 사람이다.
백곡 김득신은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을뿐 아니라 書藝家로서도 알려져 있다. 특히 草書에 능하여 세인이 草聖이라 칭하였는데, 본인은 이를 과히 좋아하지를 않고 "나는 글씨에 능하다는 평보다는 문장가로서 이름을 후세에 알리고 싶다" 고 하여 글씨를 자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친필의 일부가 문중에 전해오고 있다.
묘는 율리 후산에 안장되었다.
백곡 김득신에 대하여 전해 오는 몇가지 逸話를 소개하면
● 일화1)
청구야담에 의하면 아버지 남봉 김치는 인조반정 거사 일을 天破日로 잡아주어 성사시킨 천문과 지리에 밝은 推數家이다.
아버지는 일찍이 득신에게 이르기를 "너는 마땅히 모년 모일에 橫死할 것이니 아무리 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조심하고 말을 삼가라. 만일 말을 하면 큰 화를 면치 못하리라" 고 일러 주었다.
득신의 나이 여든 남짓 되어 그날이 다가오자 의관을 정제하고 집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3일째가 되는 날 밤중에 도둑들이 느닷없이 들어와서 재물을 약탈하고 득신을 결박했다. 그런데 그 도적떼 중에는 예전에 자기집에 있던 종이 끼어 있는 것을 보고는 "네가 감히 이럴 수가 있느냐?" 하고 소리치자, 그 종이 입을 막기 위해 득신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 일화2)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일찍이 북벌론이 일자, 김득신과 의논하고자 찾아왔다. 마침 득신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일어나서 맞이하고는 글 읽기를 계속하자 이에 우암은 말 한마디도 못 꺼내고 돌아갔다고 한다.
● 일화3)
득신의 어머니는 사천목씨인데 득신을 잉태할 적에, 득신의 아버지가 노자를 만나본 꿈을 꾸었다 하여 어릴 때 이름을 夢聃(몽담)이라고 불렀다. 그는 어려서 두질(천연두)을 심하게 앓아 우둔하게 됐다고 한다.
10살이 되어서야 <사략>을 아버지에게 배웠는데, 3일이 지나도록 잘 읽지도 못하자 외삼촌이 보고는 그만두라고 했으나 아버지가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바탕이 둔하기는 하나 文으로 빛날 운명을 타고 났으니 열심히 공부하라" 고 하니 이후로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한다.
▣ 김태서 -
▣ 태영(문) - 대부님,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김영환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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