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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60) 광주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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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6-20 19:24 조회1,5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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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운동 光州學生運動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투쟁운동.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운동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 배경, 운동의 발단과 결과 및 전국의 학생운동에 끼친 영향 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한민족의 항일의식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문화정책을 펴 나갔는데, 표면적으로는



이전의 무력적 탄압에 비하여 너그러운 듯하나, 사실은 한민족의 반항정신을 소모시키는 가장



지능적인 통치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전세계를 휩쓴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도



유입되어 한때 사회주의적인 계급투쟁에 의하여 민족주의적인 독립운동이 수세에 몰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당면의 적(敵)도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었으므로 두 진영이



협력하여 1927년 신간회(新幹會)를 조직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정세 속에서, 항일운동의 근원지인 호남지방에서 1928년 4월 16일 광주 송정리(松汀里)



항일격문사건(抗日檄文事件)이 일어났고, 4월 28일 전북기자대회사건(全北記者大會事件)이



발생하였다. 이어서 6월 2일 이리(裡里) 동양척식주식회사 습격계획이 탄로되었고, 8월 5일



전남 소년연맹결성운동이 일어났다. 이보다 앞서 1926년 11월 3일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 재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단체인 성진회(醒進會)가 왕재일(王在一)·



장재성(張載性) 등의 주도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성진회는 재학생 중심으로서 간혹 이반자(離叛者)가 생겼다. 따라서 1927년 10월 해산하고,



11월 같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독서회 중앙본부(讀書會中央本部)를 결성하였다. 이 독서회에는



각 학교의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신간회 등의 사회단체들까지도 참여하였고,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광주여고보(光州女高普)·목포상업학교의 독서회가 가입되어 있었다.



성진회나 독서회 중앙본부는 항일투쟁 단체로서 총독부에 대하여 식민지교육을 즉각 중지하고,



각급 학교에서 한국의 역사와 언어를 가르치며 사회과학연구를 활발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여러 학교에서 동맹휴학을 하도록 지도하였다. 이리하여 각 학교에서



1926∼1928년 여러 차례 동맹휴학 사건이 일어났다.



식민지 교육을 지양하고 한국인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하여 학교 당국과



도(道) 학무과 등에서는 요구조건의 수용없이 학생들을 정학(停學)·출학(黜學)·퇴학시켰고,



나아가 체포·구속까지 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각지의 학교에서 겪은 공통적인 고난이었으나,



불의(不義)에 항거하여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호남인 기질 때문에 충돌은 언제나 격렬한 면이



있었다.



이러한 험악한 정세하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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