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구묘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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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8-12-28 18:31 조회1,887회 댓글5건본문
이번에 태영님이 발견한 충렬공 묘비 탁본입니다. 탁본첩에 오려붙인 글씨를 새 묘비의 글씨에 맞추어 복원해 보았습니다. 원래 묘비에는 네 줄로 음각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諡忠烈 뒤에 公자가 더있습니다. '諡忠烈公 '인지 '諡忠烈 金公方慶'인지 ~~ . 탁본첩에는 '諡忠烈公' 의 순서로 오려붙여 있습니다.
이런 모양이었겠죠. 뒷면의 음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조우인(曺友仁)의 글씨입니다.
조우인 (曺友仁, 1561~1625) 본관 창녕(昌寧). 자 여익(汝益). 호 매호(梅湖) ·이재(頤齋). 예천(醴泉) 출생.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참봉을 지낸 뒤 1605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의 벼슬을 지내고 경성판관(鏡城判官)을 거쳐 1621년(광해군 13) 제술관(製述官)으로 상경하여 고궁의 황폐함을 보고 시를 지은 것이 이이첨(李爾瞻) 일당에 의해 대역(大逆)의 뜻이 있다는 무고를 받아 투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가 되고, 동부승지(同副承旨)를 거쳐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올랐다. 글씨 ·그림 ·시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렸고, 글씨는 특히 진체(晉體. 왕희지체)와 초서(草書)에 뛰어났다. 문집 《매호집(梅湖集)》과 가사집 《이재영언(頤齋詠言)》이 있다. |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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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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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기막힌 재생작업입니다.
비음기 재생작업까지 마치면 본 홈에 올리겠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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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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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덕분에 문중 보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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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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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옛날에 떠서 보관했던 탁본처럼 훌륭합니다.
음기(후면)는 복원이 어려운지요?
諡忠烈 金公方慶之墓가 맞는것 같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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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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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충렬공실기>에 브로마이드나 특수 접지방식을 응용해서 앞뒷면을 수록하는 방법을 고려하겠습니다.
화보에서도 돋보이는 디자인이 가능합니다. ^^
솔내영환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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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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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훌륭한 보물을 찾아내어 복원까지 하셨네요. 태영씨. 윤식씨. 발용씨.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