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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63)훙커우공원의거 虹口公園義擧(홍구공원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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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2-06-25 18:21 조회1,7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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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57세)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한 해 였습니다.



1 월 이봉창 의사께서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裕仁) 저격의거하는 의거에 이어서



이해 4.29일 윤봉길 의사 께서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 생일 경축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白川)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쾌거를 이루셨습니다.



이 모두 백범선생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훙커우공원의거 虹口公園義擧(홍구공원의거)



1932년 상하이사변을 일으켜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은 훙커우공원에서 대대적인 전승기념 및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을 가졌다.



김구(金九)의 명령을 받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단원 윤봉길은 그해 4월 29일 폭탄장치를 한



물통과 도시락을 들고 일본인으로 가장, 식장에 들어가 오전 11시 40분경 참석자 전원이



묵도하는 시간에 폭탄을 던졌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군사령관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



[河端貞次]가 즉사하고, 해군 중장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는 한쪽 눈을 실명(失明),



주중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등은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은 신분을 안 밝히고 자결하려



했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체포된 후, 일본의 오사카[大阪]로 이송되어



위수형무소(衛戍刑務所)에서 사형되었다.



이 거사는 일제를 크게 자극하였고, 일본 관헌은 한국 교포들의 근거지에 난입하여 사건과 무관한



안창호(安昌浩) 등 11명을 검거하였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 만보산(萬寶山) 사건으로 한때



악화되었던 중국 거류 한국인과 중국 관민과의 감정이 호전되고, 교포에 대한 중국인의 환대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임시정부는 중국정부로부터 후대를 받게 되었다. 장제스[蔣介石]는



“중국의 100만 대군이 못하는 일을 한국의 한 의사(義士)가 능히 하니 장하다”고 격찬하였다.













▣ 김태서 - 글 감사합니다.

▣ 김재익 -

▣ 김윤만 -

▣ 김은회 -

▣ 태영/문 -

▣ 김항용 -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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