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돈의 간의대기.보루각기.흠경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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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2-06-28 18:43 조회1,652회 댓글0건본문
김돈의 간의대기· 보루각기· 흠경각기-세종 천문대 -간의대- 건설 보고서
글 남문현 건국대 교수, 한국산업기술사학회장
세종은 여러 가지 천체 관측기들과 시간측정 기구들을 제작한 다음 경회루 주변에 배치하였다. 천체 관측기를 설치한 간의대, 자격루를 설치한 보루각, 흠경각루를 설치한 흠경각이 그것이며 이들에 대한 기문이 각각 간의대기, 보루각기, 흠경각기이다. 이 건축물들은 임진왜란 중에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대부분 없어져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다행히도 기문들이 남아있어 해당 건축물의 규모나 구조는 물론 여러 가지 기구와 시설의 구조와 작동원리, 쓰임새, 응용방법들을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
선인들은 큰 공적을 남긴 인물이나 조상의 업적을 기리는 건축물을 완성한 다음 그것에 대한 내력을 기문(記文)으로 적어놓아 사람들이 알게 하였다. 지금도 궁궐이나 사찰, 정자, 서원, 향교, 사우 등에서 이러한 기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건축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문이 남아있어 그 건축물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경우도 많은데, 조선 초기에 경복궁에 세웠던 여러 가지 시간측정 시설들이 여기에 속한다. 세종은 여러 가지 천체 관측기들과 시간측정 기구들을 제작한 다음 경회루 주변에 배치하였다. 천체 관측기를 설치한 간의대, 자격루를 설치한 보루각, 흠경각루를 설치한 흠경각이 그것이며 이들에 대한 기문이 각각 간의대기, 보루각기, 흠경각기이다. 이 건축물들은 임진왜란 중에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대부분 없어져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다행히도 기문들이 남아있어 해당 건축물의 규모나 구조는 물론 여러 가지 기구와 시설의 구조와 작동원리, 쓰임새, 응용방법들을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 이 기문들이 아니었더라면 15세기를 대표하는 세종 시대 과학기술 업적들은 역사 속에 영원히 묻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들은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등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내용이 전해온다. 위에서 언급한 기문들의 개략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세종실록』의 원문이나 번역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간의대기
『세종실록』77권 7~12쪽, 세종 19년 4월 15일 갑술조
당시 조선의 임금은 명나라의 책봉(冊封)을 받았으므로 명나라 황제가 매년 동지절에 각국에 배포하는 대통력(大統曆)이라는 역서(曆書)를 받아다 써야했다. 조선시대에 이 역서를 받으러 중국에 가는 사신이 바로 동지사(冬至使)라는 사신이다. 사신이 역서를 받아 귀국하는데는 몇 달이 걸렸으므로 한양에서는 정월이 지나서야 새해의 책력을 볼 수 있었다. 책력은 연중 날짜와 24절기의 정확한 시각을 비롯하여 기념일이나 농사에 필요한 시기 등 일상생활에 긴요한 내용이 들어 있어 새해가 시작되는 동지절에는 바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월이 지나서야 나누어 주게되니 이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는 체통이 서지 않는 일이었음은 물론 받아오는 책력의 부수도 적어(명나라 실록에 따르면 조선에는 황력 10부, 민력 100부 정도가 배정되었다) 대소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기에도 턱없이 모자라 이것을 다시 인쇄하여 나누어주어야 하는 불편까지 겪어야했다. 더구나 대통력은 북경을 기준을 작성된 역서여서 한양을 기준으로 할 때는 시간의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이에 세종은 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역서를 만들어 백성에게 반포하기로 결심하고 역서 교정에 필요한 천문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먼저 한양의 북극출지(위도)에 맞는 천체 관측기와 시계들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역법 독립을 위해 세종이 착수한 의표창제(儀表創製)사업인데 이 사업에 대한 전말과 성과를 기록한 것이 김돈(金墩, 1385-1440)의 간의대기(簡儀臺記)이다. 이 사업은 세종 14년 초가을에 착수되어 7년 만인 세종 20년 봄까지 계속되었다. 먼저 북극출지를 확정하기 위해 대간의를 제작하고 이것을 설치할 간의대를 축조하였다. 여기서 간의대란 경회루 북쪽 야외에 간의 등을 설치한 축대시설을 말하는데 한편으로는 7년여에 걸쳐 제작한 모든 기구와 시설물을 총칭하는 천문대를 통칭하기도 한다. 간의대기는 천문대 시설과 기구 전부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에 언급된 시설물과 기구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천체관측 기구인 간의와 정방안(正方案) 그리고 이것을 설치한 축대시설
2. 소형화시킨 간의
3. 해와 별을 이용하여 시각을 결정하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와 이것을 소형화시킨 소정시의
4. 동지에 해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여 일 회귀년(回歸年)의 길이를 정하는 동표(銅表)
5. 천체 운동을 모형화한 혼의와 혼상 그리고 이것을 설치한 건물
6. 표준시계와 이것을 설치한 보루각 7. 천문시계와 이것을 설치한 흠경각 8. 해시계인 앙부, 현주, 천평, 정남 일귀
9.도량형의 기본 척도인 주척(周尺) 이다.
보루각기
『세종실록』65권 1~3쪽, 세종 16년 7월 1일 병자조
장영실이 만든 표준시계인 보루각루(흔히 자격루라 부른다)의 원리와 구조, 운영 방법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서와 명은 김조(초명은 김빈)가 짓고, 기는 집현전 학사인 김돈이 지었다. 자격루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기계 기술자인 장영실이 만든 국가 표준시계였다. 보루각기는 자격루의 원리와 구조를 기록한 것으로 단일 기계에 대한 기록으로는 조선조 최초 최대의 것이다. (자격루의 구조에 대하여는 본보 1999년 5월 호「자격루~우리 나라 최초의 디지털 시계」참조) 현재 보루각기를 바탕으로 복원 설계가 끝나 실물제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문화재관리청은 경복궁의 경회루 앞 보루각 옛터에 보루각을 짓고 그 안에 자격루를 복원하여 설치할 계획이다.
흠경각기
『세종실록』80권 5~6쪽, 세종 20년 정월 7일 임진조
흠경각루(일명 옥루)는 장영실이 자격루에 이어 만든 또 하나의 자동 물시계로 천체현상과 시각을 동시에 연시(演示)해 주는 천문시계인데 이것의 제작 전말을 적은 것이 흠경각기로서 우승지 김돈이 지었다. 세종은 『서전(書傳)』의 가르침에 따라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에게 시를 알리고 농사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침전 가까이 흠경각을 짓고 그 안에 천문시계를 설치하였다. 시계 주변에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빈풍도의 모형을 만들어 늘어놓고 백성들의 생활과 농사짓는 어려움을 몸소 느끼며 중농애민(重農愛民)하는 정신과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장소로 삼았다. 이 시계는 당시 중국은 물론 아라비아의 첨단 시계제작기술을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 조선조 천문시계의 최고봉이다. 현재 기문에 나타난 대로 전체 규모와 동작원리를 연구하고 있다.(사진은 10여 년 전 북한 학자들이 제작한 흠경각루 이다)
현재 문화재관리청은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위의 시설과 기구들을 복원하기 위해 1992년부터 기초조사와 아울러 일부 기구를 복원하거나 설계를 해놓은 상태이다. 머지 않아 이들 시설과 기구들이 복원되어 찬란했던 세종 과학의 면모가 우리 앞에 들어 나기를 기대해 본다.
▣ 김영환 -
▣ 김태서 -
▣ 김항용 -
▣ 김윤만 -
▣ 聚善堂 -
▣ 김주회 - 어마어마한 자료입니다. 천문 과학 내용이라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 김재원 -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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