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안렴사공 묘소 참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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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1-07-24 03:26 조회2,228회 댓글0건본문
잘 읽었습니다
깔끔한 글 솜씨와
푹푹찌는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한줄기의 소나기를 맞는 기분..
좋은 시간들과 유서깊은 곳을
공유하게 해주시어 정말 감사 합니다
김정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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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wrote:
: 지난 7월 22일 휴가를 맞아 먼저 고향(충북 괴산)에 갔다가,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안렴사공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이에 간단히 참배기를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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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렴사공 묘소 참배 및 방문기>
: 7월 22일 11시. 충북 괴산에서 아버님(泰燮)을 모시고 출발하여 오창에 도착하였습니다.
: <안렴사공파 종회> 재균(在均) 총무님이 운영하시는 <양지가든>을 먼저 갔습니다. 이곳에서 안렴사공파 재택(在澤) 회장님을 만났고, 점심식사를 참으로 융숭히 대접받았습니다.
: 이어 먼저 재균 총무님의 차량으로 안렴사공 묘소(오창면 모정리)로 가서 단정하고 깨끗하게 지어진 영모재(永慕齋.고직사 포함 약 50 여 평)를 살펴 보고 뒷산으로 돌아갔습니다.
: 약 1만 여 평의 야산에 아름답게 조성된 묘역(2000년 4월, 묘역 정화 보수)이 나타났습니다.
: 나무마다 헌수자의 이름이 돌에 새겨져 있을 만큼 정성으로 나무와 잔디들을 관리하는 등 정말로 곱게 단장돼 있었습니다.
: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는 언덕의 좌상에는 정간공(貞簡公.휘 永煦)과 영삼사공(領三司公 휘 천)의 영단(靈壇)이 있었고, 우상에는 안렴사공(按廉使公. 휘 士廉. 향사일 음력 10월 5일)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안렴사공의 증손(휘 취. 이 분의 묘소를 쓰기 위해 땅을 팔 때 안렴사공의 지석이 발견되어 평장 이후 유실 됐던 안렴사공의 묘소를 찾게 됨)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 모든 선조님께 참배를 마치고 나오며 안렴사공 묘비석과 신도비(1954년 건립. 2000년 중건)를 살펴보고 나와서 이어 송천서원(松泉書院. 오창면 양지리. 원래는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에 있었는데, 고종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철폐되었다가, 해방후 이곳에 복원됨)으로 향했습니다. 모두 1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는데 안렴사공 선조님을 주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 배례를 올리고 나와 일행은 몇가지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의 <안렴사공파>소개란을 작성하실 분 선정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자격을 겸비하신 분이라야 하겠는데, 그 가장 적임자로서 이구동성으로 주회종친을 추천하셨습니다. 우선하여 그 말씀을 먼저 이곳을 통하여 전달 드리며, 아울러 안렴사공파 종회장님께 빨리 연락(전화:043-217-7722)을 주셨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곳 오창에는 우리 일가들이 모두 250여 호가 살고 있는데, 제학공파가 3호, 익원공파가 2호, 나머지 약 250 여호는 모두 안렴사공파 종친들이라고 합니다.
: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충남 천원군 병천면으로 향했습니다. 송정2리(일명 복다회리)에 살고 계신 한학자요, 한시인으로서 지난 1988년 韓中日 3국의 한시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우리나라와 우리 安金을 빛내신 상철(相喆. 84세. 제학공파 통덕랑 후손) 어르신을 문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 동네 입구에는 장원하신 자랑스런 시비(시 제목:晩秋)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댁을 방문해 보니 뇌졸중으로 인해 말씀이 어눌하시고 수족이 불편하신 상태이셨으며, 아드님(호응씨)께서 정성어린 간병을 하고 계셨습니다.
: 이어 이미 출간하신 시집(松堂集) 외에 그 후에 집필하신 시들을 보고 복사 요청을 한 뒤 쾌유를 빌고 떠나 왔습니다.
: 괴산으로 되 돌아 오는 길, 여름 한낮의 더위는 무더웠지만 선조님의 참배로 더없는 즐거움과 알찬 보람으로 가득한 제 마음은 한없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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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글 솜씨와
푹푹찌는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한줄기의 소나기를 맞는 기분..
좋은 시간들과 유서깊은 곳을
공유하게 해주시어 정말 감사 합니다
김정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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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wrote:
: 지난 7월 22일 휴가를 맞아 먼저 고향(충북 괴산)에 갔다가,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안렴사공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이에 간단히 참배기를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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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렴사공 묘소 참배 및 방문기>
: 7월 22일 11시. 충북 괴산에서 아버님(泰燮)을 모시고 출발하여 오창에 도착하였습니다.
: <안렴사공파 종회> 재균(在均) 총무님이 운영하시는 <양지가든>을 먼저 갔습니다. 이곳에서 안렴사공파 재택(在澤) 회장님을 만났고, 점심식사를 참으로 융숭히 대접받았습니다.
: 이어 먼저 재균 총무님의 차량으로 안렴사공 묘소(오창면 모정리)로 가서 단정하고 깨끗하게 지어진 영모재(永慕齋.고직사 포함 약 50 여 평)를 살펴 보고 뒷산으로 돌아갔습니다.
: 약 1만 여 평의 야산에 아름답게 조성된 묘역(2000년 4월, 묘역 정화 보수)이 나타났습니다.
: 나무마다 헌수자의 이름이 돌에 새겨져 있을 만큼 정성으로 나무와 잔디들을 관리하는 등 정말로 곱게 단장돼 있었습니다.
: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는 언덕의 좌상에는 정간공(貞簡公.휘 永煦)과 영삼사공(領三司公 휘 천)의 영단(靈壇)이 있었고, 우상에는 안렴사공(按廉使公. 휘 士廉. 향사일 음력 10월 5일)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안렴사공의 증손(휘 취. 이 분의 묘소를 쓰기 위해 땅을 팔 때 안렴사공의 지석이 발견되어 평장 이후 유실 됐던 안렴사공의 묘소를 찾게 됨)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 모든 선조님께 참배를 마치고 나오며 안렴사공 묘비석과 신도비(1954년 건립. 2000년 중건)를 살펴보고 나와서 이어 송천서원(松泉書院. 오창면 양지리. 원래는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에 있었는데, 고종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철폐되었다가, 해방후 이곳에 복원됨)으로 향했습니다. 모두 1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는데 안렴사공 선조님을 주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 배례를 올리고 나와 일행은 몇가지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의 <안렴사공파>소개란을 작성하실 분 선정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자격을 겸비하신 분이라야 하겠는데, 그 가장 적임자로서 이구동성으로 주회종친을 추천하셨습니다. 우선하여 그 말씀을 먼저 이곳을 통하여 전달 드리며, 아울러 안렴사공파 종회장님께 빨리 연락(전화:043-217-7722)을 주셨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 이곳 오창에는 우리 일가들이 모두 250여 호가 살고 있는데, 제학공파가 3호, 익원공파가 2호, 나머지 약 250 여호는 모두 안렴사공파 종친들이라고 합니다.
: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충남 천원군 병천면으로 향했습니다. 송정2리(일명 복다회리)에 살고 계신 한학자요, 한시인으로서 지난 1988년 韓中日 3국의 한시 백일장에서 장원하여 우리나라와 우리 安金을 빛내신 상철(相喆. 84세. 제학공파 통덕랑 후손) 어르신을 문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 동네 입구에는 장원하신 자랑스런 시비(시 제목:晩秋)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댁을 방문해 보니 뇌졸중으로 인해 말씀이 어눌하시고 수족이 불편하신 상태이셨으며, 아드님(호응씨)께서 정성어린 간병을 하고 계셨습니다.
: 이어 이미 출간하신 시집(松堂集) 외에 그 후에 집필하신 시들을 보고 복사 요청을 한 뒤 쾌유를 빌고 떠나 왔습니다.
: 괴산으로 되 돌아 오는 길, 여름 한낮의 더위는 무더웠지만 선조님의 참배로 더없는 즐거움과 알찬 보람으로 가득한 제 마음은 한없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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