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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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7-05 21:10 조회1,515회 댓글0건본문
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29
<충청북도 樓亭記文과 題詠, 1999, 전국문화원연합회 충청북도지회>
▣ 招隱亭序---김득신 (104-134 백곡집 문집 책5)
--- 招隱亭 : 忠州 州南 金+刃巖 陰崖
내가 일전에 중원 金+刃巖의 서쪽 벼랑에 있는 초은정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 정자의 주인 처사 윤아무개는 구봉 선생의 아들로서 정말로 고아한 옛 군자였다.
그 주인 노인네에게 이르기를 "이 정자는 세운지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정자가 없었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예전에 제 선군의 외조부 되시는 분이 여기에 정자를 세우셔서 초은정이라 이름하였는데, 제가 이제 또 새롭게 이 정자를 세우고 인하여 그 이름으로 하였으니, 제가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말하기를 "그래서 그 뜻이 자연히 온 것입니다. 시내가 흘러가고 산수의 뛰어난 경치를 아주 좋아하여 그런 것입니다." 하였다.
주인 노인네가 옥잔에 향기로운 술을 가득 부어 권하니 사양할 수 없어 두 세잔을 마시니 취기가 올라 난간에 기대니 눈이 스르르 감겼다.
정자의 동쪽은 큰 산이 하늘로 솟아 있는데, 절벽이 깎아지른 듯 서 있고 숲이 우거져 있으며, 맑은 강물이 주위를 두르고 있어 가히 초은자가 숨을만 하였다.
그 남쪽은 우뚝한 봉우리들이 모여 나란히 서 있으며, 그 아래는 강물에 깊이 뿌리하고 있어 골짜기의 기운이 그윽하고 조용하니 가히 초은자가 숨을만 하였다.
서쪽으로는 푸른 절벽이 강가에 솟아 있는데, 또다시 돌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으니 옥녀봉이라고 하였다. 사면이 모두 막혔으니 가히 초은자가 숨을만한 곳이었다.
북쪽으로는 구름같은 봉우리가 즐비하게 서로 연이어 있어 온갖 바위가 빼어남을 다투고 있으며, 무수한 봉우리가 서리어 들러 있으니 가히 초은자가 숨을만 하였다.
대개 이처럼 땅이 궁벽진 곳에는 집 짓는 것이 거의 없어 서울로 가면서도 인적이 이르지 않으니, 隱士가 정자를 지어서 초은을 두었으니 그 뜻을 얻은 것이다.
또한 옛 사람이 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 또한 이 뛰어난 승경을 나누고 있었는데, 주인 노인네가 이를 허락하니,
만약 그러하면 이 험한 것을 제외하고 이 몸을 거두어 주어 쇠약해져 가는 몸을 지탱해 주는 것이니 주인 노인네의 초은의 뜻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해가 어둑해지자 베개를 베고 누우니 취한 꿈 속에서 문득 머리가 허연 노인이 나에게 이르기를 "당신은 진실로 골짜기에 은자가 되겠는가."
내가 말하기를 "주인장께서 이 땅을 나누어 주시면 나도 여기에 은거하겠습니다."
노인이 말하기를 "어째서 여기에 은거하려 하는가?" 하니
내가 말하기를 "저는 쇠해가는 세상에 스스로 이름없이 숨고자 힘써왔기 때문에 산골에 숨고자 하는 것입니다."
노인이 말하기를 "은자는 그 이름을 숨기고자 그 몸을 숨긴다. 만약 그대가 이름을 숨기지 않고 몸을 숨기고자 한다면 가하겠는가?"
"만약 주인장께서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삼십여년을 산골에 숨어 있으면서, 사람들을 떠나 속세를 끊으면, 그 이름이 세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니 정말 숨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노인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옛날 주나라가 쇠해질 때 노자는 이름이 천하에 떨치고 있었지만, 그는 곤륜산으로 들어가 끝내 다시 나오지 않았어도 그러하니 이것은 숨었다고 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닌가?"
내가 주인 노인과 함께 은거하고자 하니, 이는 이 산의 영험이 시기하여 속인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미 주인장의 허락을 얻어 장차 산 속의 눈 쌓인 곳으로 들어가자 노인은 곧 물러가고, 나는 문득 깨어나니 하나의 아름다운 꿈이었다.
주인장의 뜻을 돕기 위해 억지로 불가의 일을 빌려와 초은정의 서문을 쓴다.
화산의 김아무개 공보
▣ 김영환 -
▣ 김태서 - 글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선문선답이려니 했는데 결국 꿈이었네요.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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