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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육백년사 (7) 김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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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2-07-28 19:49 조회1,61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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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김질(金銷)

【생몰년】 1422(세종 4)∼1478(성종 9)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가안(可安), 쌍곡(雙谷)

【시 호】 문정(文靖)

【시 대】 조선 전기

【성 격】 문신



1422(세종 4)∼1478(성종 9).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가안(可安), 호는 쌍곡(雙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종숙(金宗淑)의 아들이며 세조(世祖) 때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사위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문음(門蔭)으로 충의위(忠義衛)에 속해 있다가 성균관(成均館)에 수학(修學)하기를 청하여 허락받았으며 문종(文宗) 즉위년(145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주부(成均館主簿)에 이어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이 되어 성삼문(成三問) · 최항(崔恒) ·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가 되었다. 이 무렵 성삼문(成三問) · 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단종(端宗) 복위(復位)를 위해 거사를 도모하다가 발각이 두려워 장인인 정창손(鄭昌孫)과 함께 세조(世祖)에게 고변(告變)하여(1456) 사육신(死六臣) 사건을 일으켰다. 그 공으로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에 승진되고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추봉(追封)되어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는 황해(黃海) · 평안도 순찰사(平安道巡察使)가 되고 세조 7년(1461)에는 평안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세조 9년(1463)에는 공조 판서에 이어 병조 · 형조 판서를 거쳐 세조 12년(1466)에는 우참찬(右參贊)에 승진되었다. 이듬해에는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세조 14년(1468)에는 우의정에 오르고 이어 좌의정이 되었는데 세조(世祖)가 죽자 한명회(韓明澮) ·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원상(院相)으로 서정(庶政)을 주관하였다.

성종 2년(1471)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진봉되었고 1474년에는 우의정으로 주문사(奏聞使)로 명(溟)나라에 다녀왔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名世叢攷, 朝鮮人物號譜

【관련항목】 박숙진(朴叔秦)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어세겸(魚世謙) 유응부(兪應孚) 정창손(鄭昌孫)









▣ 김태서 -

▣ 김재이 - 감사합니다 잘알앗습니다

▣ 솔내 영환 -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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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종태
작성일

  서울육백년사에 김질의 한자음이 원래의 한자로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