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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육백년사 (17) 김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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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2-07-29 06:22 조회1,4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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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김치(金緻)

【생몰년】 1577(선조 10)∼1625(인조 3)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사정(士精), 남봉(南峰), 심곡(深谷)

【저서·작품】 《심곡비결(深谷秘訣)》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577(선조 10)∼1625(인조 3).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 또는 심곡(深谷)으로 부사(府使) 김시회(金時晦)의 아들로서 중부(仲父)인 상락군(上洛君) 김시민(金時敏)에게 입양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선조 30년(1597)에 알성 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설서(說書)를 거쳐 1608년에는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광해군 때 사복시 정(司僕寺正) · 이조 참의(吏曹參議) · 동부승지 · 대사간을 거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 부제학(副提學) 등을 지낸 다음 병조 참지(兵曹參知)에 올랐으나 독직사건으로 파면되었다. 한때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 이조 吏曹에 있으면서 흉한 일을 모의했으며 대사간으로 있으면서 영창대군(永昌大君) 살해음모를 반대하는 정온(鄭蘊)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광해군의 폭정(暴政)이 심해지자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때 심기원(沈器遠)과 내통, 벼슬길에 올랐으나 대북파(大北派)에 몰려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동래 부사(東萊府使)를 거쳐 1625년에는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천문(天文)에 밝았으나 재물을 탐내어 비난을 받았다. 저서로 《심곡비결(深谷秘訣)》이 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名世叢攷, 嶠南誌

【관련항목】 김득신 (金得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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