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서울육백년사 (18) 김 휘

페이지 정보

김은회 작성일02-07-29 06:26 조회1,490회 댓글0건

본문

【성 명】 김휘(金徽)

【생몰년】 1607(선조 40)∼1677(숙종 3)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돈미(敦美), 사휴정(四休亭), 만은(晩隱)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607(선조 40)∼1677(숙종 3).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 또는 만은(晩隱)이며 판충추부사(判中樞府事) 김시양(金時讓)의 아들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인조 20년(164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봉교(奉敎)로 임명되었으며 인조 24년(1446)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가 사사(賜死)되자 정언(正言)으로 재직하면서 사사(賜死)의 경위를 규명하라는 일반 사림의 자격으로 소(疏)를 올렸다가 파직되었다. 효종 즉위년(1649) 부수찬(副修撰)에 기용되고 이조 좌랑(吏曹佐郞) · 이조 정랑(吏曹正郞) · 교리(校理) · 응교(應敎) · 헌납(獻納) · 사간(司諫) ·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顯宗) 연간에는 충청도 관찰사· 도승지 · 함경도 관찰사에 이어 현종 6년(1665)에는 경상도 관찰사에 이어 강화 유수(江華留守) · 황해도 관찰사등을 역임하였다. 1666년에는 남인(南人)의 탄핵으로 삭직(削職)당했다가 현종 9년(1668)에 형조 참판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숙종 1년(1675)에는 이조 판서를 지내고 이듬해에는 예조 판서 · 개경 유수(開京留守)를 역임하였다. 그림을 잘 그렸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槿域書畵徵















▣ 솔내 영환 -

▣ 태영/문 -

▣ 김항용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