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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1차 보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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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문 작성일02-08-04 13:05 조회1,8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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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1차 보고(4)



<7월 29일 월요일> - 첫날 밤 행사 이후



(1)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 참배

◆07:30 아침식사 - 08:00 참배 준비 - 08:50 충렬공 묘소 참배

< 안김의 성지, 충렬공 묘소 >



다들 빡빡한 일정으로 지친 데에다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이불 속에서 쬐끔만 더 누워

있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충렬공 할아버지 성소(聖所)를 참배하기 위해 아침식사를 마치고

08:00시에 참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음수재 바로 뒤편 할아버지 묘소는 잘 정돈돼 있었습니다. 답사팀 일행은 잡풀을 뽑는 등

묘역을 정돈한 뒤 영환 종친과 항용 종친의 집전 아래 참배에 들어갔습니다.



간소하나마 정성껏 준비한 주과포 등을 진설하고, 항용 종친께서 고유문을 독축한 다음 향

을 사르고 잔을 올렸습니다. <고유문>은 별도로 항용 종친께서 게시판에 올릴 예정입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와 신도비 등에 관해서는 홈페이지에 자료가 많이 올라와 있으니 참

고하시기 바랍니다.)



(2) 김준식 안동시 문화원장 특별강연

◆09:10-10:05 제목:안동지역과 안동김씨

◆초청강사:김준식 / 장소:음수재 / 참석자:안사연 회원(답사팀) 및 봉수(태용) 종친

< 새로운 연구과제를 준 특강 >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 참배 후 09:10부터 안동시 문화원장이신 김준식 선생을 모시고 특강

을 들었습니다. 김준식 선생은 광산김씨 예안파(밀직부사공파)이십니다. 이 특강은 우리 선

김과 광김 예안파와의 각별한 관계로 김준식 선생께서 선뜻 응해 주셨기에 이루어진 것입니

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강의 주제는 사전에 항용 종친께서 홈페이지에 질문 내용을 게시해 선별한 것으로 대부분

충렬공 할아버지 묘소 발견경위 및 선김과 광김의 관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 내용은 이미 잘 아시고 계신 사항이므로 생략하고, 강의 내용 중 특이사항만 간추려 보

고드립니다. 이 중에는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이 있어 향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고 생각합니다.



------ 주요 내용 -----

①광김의 예안 입향조는 참판공 김효로 공의 5대조이신 김진근 공으로서 그 배위 되시는 분

이 영가권씨(안동권씨)이시다. 이분이 바로 충렬공의 외손녀이시므로 <외외손(外外孫)>이다.

또한, 김효로 공의 증조부 김무 공께서 안동으로 내려오셨는데 그 배위 되시는 분이 안동김

씨이시다.



②선김과 광김은 수백 년간 동산수호(同山守護)를 해 온 관계를 맺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김효로 공의 장례시 충렬공의 묘소 지석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

나 김효로 공의 생몰 연대를 고려할 때 김효로 공의 증손자인 김해 공의 장례시 충렬공의

묘소 지석이 발견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한다.

김해 공은 임란 다음 해에 돌아가셨는데, 충렬공 묘소 위쪽에 김효로 공의 묘소가 있고, 충

렬공 묘소 밑에 땅을 판 흔적이 있다. 이로 보아 김해 공의 장례시에 지석이 출토된 것으로

추정한다.



③충렬공 묘비석은 임란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임란 10년쯤 후가 아닐까 생

각한다.



④충렬공께서 돌아가신 곳은 충렬공의 행적을 고려할 때, 안동 지역이 아니라 개성(개경)이

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실제로 이 문제는 김준식 원장에 이어 영환 종친께서 발표한 연구

보고에 의해 개경의 앵계리임이 확실해졌습니다.)



⑤아주 오랜 옛날 이곳 죽송동(<능골>을 뜻함)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지례(知禮)에만 인가

가 있었던 것 같다.(이 문제는 당시 능골의 지명이 있었으면, 지명을 표기했을 터인데 <지

례의 북쪽>으로 표기된 까닭에 대한 답변입니다.)

<참조> 광김 김해 공의 묘지명

"이 해 11월 경오일에 현의 서쪽 지례의 북쪽 들에 장례 지냈으니, 상락공 김방경의 묘와

같은 산자락이다. 대저 선생은 상락공의 외손인 까닭이다."(자료제공:주회 종친 <안동.의성 성지순례> 22페이지 참조)



⑥<화림촌>은 여러 가지 연유를 고려할 때 <회곡동> 인근인 듯하다.



⑦충렬공께서 식읍을 받으신 곳 중 하나로 <녹전>을 연상하기도 하는데, 한자로 <祿轉(녹

전)>이라 적는다. 따라서 <祿田(녹전)>으로 유추하기에는 다소 어렵지 않는가 생각한다. 실

제로 예안현의 서쪽산을 <녹전산(祿轉山)>이라 했다.



⑧기타 - 현재의 안동은 예전(조선시대)의 안동과 예안현이 합쳐진 곳이다. 안동은 예로부

터 예안지지, 이수합수지지라고 했는데, <이수합수지지>의 <이수합수>는 <영가(永嘉)>의

파자(破字)에 해당한다. <택리지>에 <안동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다>라고 했고, 문화재만

하더라도 경주의 250여 점에 비해 10여 점이 더 많은 260점에 달하는 문화 유적의 본고장이

다.



(3) 안사연 학술행사(<영계리> 지명 연구 발표)

< 문중의 큰 숙제 하나 풀리다 >



◆10:10-10:30 제목:충렬공께서 돌아가신 본댁은 과연 어디인가?

◆발표 김영환 종친

◆내용 요약:충렬공 묘지문(기미대동보)에 기록된 <영계리>는 개경(개성)의 <앵계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상세 내용은 영환 종친께서 게시판에 올리신 글을 보시기 바랍니

다.)



(4) 음수재에서 도산서원까지

◆10:40 음수재 출발 - 10:45 충렬공 신도비 도착, 10:55 도산서원 향 - 11:06∼11:46 도산

서원 방문

< 휘 사원 할아버지와 월란정사 >



학술행사를 마친 다음 답사팀은 음수재 뒤에 마련된 <영정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곳에서 영환 종친께서는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삼문(三門) 출입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

습니다.(삼문은 반드시 동쪽 문으로 들어오고, 서쪽 문으로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영정각>에서 차례로 큰절을 올린 답사팀은 음수재에서 기념촬영 후 충렬공 신도비를 거쳐

구불구불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아름다운 산길을 돌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산서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산서원에 관한 내용은 주회 종친을 비롯해 영환 종친, 정중 종친 등 여러 종친들께서 게

시판에 올리신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산서원에 대한 설명 역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촌마을의 정중 종친께서 맡아 주셨

습니다. 정중 종친은 강 건너편 도산시(향시) 과거 터가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10m 이상 끌

어올리게 된 사연을 비롯해 퇴계 선생의 제자 중 만취당 휘 사원 할아버지께서 유일하게 정

자 터를 받으신 내력을 자랑스럽게 설명해 나가셨습니다. 그 정자가 바로 <월란정사>인데,

진성 이씨 퇴계 후손과 안동김씨 사촌 종중 후손들이 400여 년이나 번갈아 가며 유사를 맡

아 매년 학술회의를 열어 왔다고 합니다.(상세 내용은 게시판에 게재된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살갗을 태울 정도로 이글거리는 폭염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퇴계서원은 탐방객들로 만원이

었습니다. 마침 퇴계서원에서는 전국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선비체험> 행사가 실시되고

있었습니다. 고색창연한 도산서원으로 들어서면서, 어제 하회마을 탐방시 윤만 종친께서 알

려 주신 한옥 보는 법을 되새기며 옛 건물들을 살펴보니 그렇잖아도 볼 것 많은 도산서원

관람이 더욱 길어졌습니다. 다만, 빡빡한 일정과 쨍쨍한 폭염 등으로 인해 퇴계종택을 방문

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5)안동 헛제삿밥

◆12:02 오천 군자리 문화재단지 도착 - 12:12 안동댐 향, 12:44 안동댐 도착 - 12:52 왕건

촬영장 도착 - 13:19 까치구멍집 도착(점심식사) - 14:15∼14:50 안동민속박물관 관람 -

15:14∼15:30 영호루

< 밥 먹고 합시다, 글구 고춧가루 탄 식혜 드셔 보셨나요?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도산서원 관람을 끝내자 슬슬 허기가 지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워

낙 일정이 빠듯한지라 우리 일행은 오천 유적지로 향해야 했습니다. 안동댐 때문에 광산김

씨 예안파의 중요 건물들이 수몰되자 이곳으로 집단 이주해 장대한 기와집들이 한곳에 모이

게 되었답니다.(상세 내용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10여 분간 머무른 우리 일행은 안동댐에 설치된 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사극 <태조 왕건>, <명성황후>, <제국의 아침> 촬영을 위한 야외 세

트장입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이동 중에 행렬이 끊어져 3대의 차량이 행렬에서 이탈, 한참

고생한 끝에 합류하는 고생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뜨거운 날씨(이 날 영동지역은 푄현상으

로 36.6도에 달했다고 합니다)에 지쳐 종친들은 해상 촬영장으로 내려갈 힘도 없는 듯했습

니다.



얼마 후 전 차량이 합류해 다시 안동댐 위의 다리를 건너 널찍한 주차장 앞의 <까치구멍집

>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들 고대하던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고풍스런 놋그릇에 담긴 <헛제삿밥>은 전주 비빔밥, 진주 비빔밥과 함께 우리 나라 3대 비

빔밥 중 하나라고 합니다. 놋제기 위에 깔끔하게 얹은 반찬 중에는 아주 부드러운 고기가

있었는데, 이곳 출신인 우회 종친께서 상어고기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상어? 그 <숭악한>

상어라고요? 그런데 맛은 어찌 그리 부드러운고!



식사 후에 <안동식혜>가 나왔는데, 식혜가 맵더라고요! 맛이요? 맛은 매콤하지만 또 먹고

싶은 게 묘하게 <땡기는> 맛인데, 홍당무를 자디잘게 썰어 넣은 점도 색달랐습니다. 이곳에

서는 이것을 <식혜>라고 하고, 중부지방에서 부르는 식혜는 <감주>라고 하더군요.



잘 모르지만, 요리 연구가들은 <안동식혜>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답니다. 함경도 지방의 <

가자미 식해> 다들 아시죠. 그 <식해>가 변하고 변해서 중부지방에서

보는 허연 <식혜>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중간 단계에 있는 것이 바로 <안동식혜>랍니

다. 그래서 고춧가루도 들어간답니다(아마 임란 이후겠죠). 여하튼 일품이었고, 말로만 듣던

<안동식혜>를 맛보았으니 행운이었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운 우리 일행은 안동민속박물관을 관람한 다음 영호루에 도착하였습니다. 우

리 나라 3대 정자 중 하나라는 영호루는 지금의 자리에서 건너다보이는 쪽에 있었는데, 홍

수로 여러 차례 떠내려가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치는 물론 빼어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여몽연합군 총대장으로 안동을 지나시다

가 영호루에 올라 시를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충렬공의 둘째 아드님이신 휘 흔 할아버지와

현손이신 문온공 휘 구용 할아버지께서도 이곳에서 시를 지으셨다는 점입니다.

또한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시를 지으심으로 해서 영호루가 그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호루와 충렬공 할아버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연을 갖게 된 것

입니다.



그런 저런 사연을 떠올리며 우리 일행은 사행시 짓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시제는 충렬공 할

아버지께서 지으신 7언절구 <동정과차복주등영호루음시(東征過次福州登映湖樓吟詩:일본을

정벌하러 가는 도중 안동의 영호루에 올라 읊은 시)>의 끝 음 4자였습니다.

그러자 정중 종친께서 제1착으로 멋진 사행시를 제출하시고, 재원 종친께서 2착을 하셨습니

다. 다른 분들은 이 날 오후까지 제출, 다음 날 사촌마을에서 낭독 발표를 하였습니다.



다음 보고는 사촌마을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가능하면 내일 보고를 끝으로 1차 보고를

마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정중 - 으으 새벽 4시...... 모두 잠든 밤 작품이... 고맙습니다

▣ 김재원 - 안동 일정 자세히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발용 - 원래 작가들은 잠이없는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너무너무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소주 한 잔 더드리겠습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내용이 너무 지루해서 걱정입니다. 발용 대부님 말씀처럼 저녁에 자고 한밤중에 일하니 괜찮습니다. 정중 형님, 오랜 시간 걸리는 거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 김항용 - 참으로 감사합니다. 님의 소중환 노고는 우리 문중의 귀중한 문헌자료로 남게 되리라 믿습니다.

▣ 김영윤 - 태영씨의 현장감있고 일목요원한 보고서를보니 감사할뿐입니다 노고에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할지......

▣ 솔내 영환 - 그때로 돌아간 듯 재미 있습니다.

▣ 김은회 - 고맙습니다.

▣ 김재익 - 수고하심에 감사 들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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